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 파워인터뷰
고이경 (성신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외래교수)
◈ 자기소개 및 걸어오신 길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국복지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고이경입니다. 그런데, 요즘 연구보다 강의가 많아 ‘교수’ 호칭을 더 많이 듣는 거 같네요. 저는 대학교 및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평생교육원 등에서 사회복지 전공생들에게 학과수업을 진행하고,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에서는 법정보수교육, 탐나는서사협클래스, 그리고 신입회원 특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 사회복지사로서의 첫 시작은, 1997년 11월 서울시립신목종합사회복지관의 개관과 함께였구요. 이후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박사과정 공부를 마치고,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와 강의를 병행해오고 있습니다. 개인연구보다는 보건복지부 및 다양한 영역의 사회복지현장들로부터 받은 연구프로젝트들에 여러 연구자들과 함께 참여하였고 최근 몇 년간, 제가 주로 진행하고 있는 강의는 <PIE(환경 속의 인간)관점에 따른 외부공모 사회복지프로그램 기획서 작성>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아! 그리고, 여러 곳의 사회복지기관에서 운영·인사·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현장과 함께 호흡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난 시간이 어느새 25년이네요.
◈ 정말 교수님께서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시고 계시네요! 사회복지실천 현장에서 근무하시다가 사회복지 학계로 전향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으신가요?
가방끈을 늘리면, "더 훌륭한 사회복지사"가 될 거라는 착각이 있었던 거 같아요. 제가 근무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겨울 오후에, 가정폭력을 피해 피 묻은 알몸으로 복지관 사무실로 뛰어 들어오신 여성 클라이언트가 있으셨어요. 상담의 경험도, 상황대처에 대한 적절한 지식도 없던 20대 초반의 신입 사회복지사에게 너무도 충격적인 상황이었고 또 하필 그 순간 신입사회복지사 몇 명만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비슷하게 대처하셨겠지만 제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벌떡 일어나 제가 입고 있던 코트를 내어드리고, 따뜻한 차 한 잔과 눈물을 닦을 티슈 몇 장을 앞에 놓아드린 일이었어요.
근데, 그 순간 제 머리 속에 떠오른 첫 번째 생각은 ‘아!~ 내 코트에 피가 묻겠다.’ 라는 너무도 이기적인 생각이었어요.
이후, 마음을 가다듬고 위급한 상황에 대한 조금은 진정된 대화를 진행해나가던 중, 잠깐의 침묵시간이 생겼고, 저는 “침묵의 의미를 탐색하는 것”이 사회복지실천의 의미 있는 기술이라는 것을 생각조차 못하고, 나의 무지(알지 못함)를 숨기기 위해 개인적으로 궁금한 질문들을 건네며 상담 아닌 상담(?)을 지속하였습니다.
몇 년간 일을 하면서도, 그 날의 무지함과 미숙함이 맘에 걸렸고(물론 그 이후로도 시말서를 쓸 만큼의 미숙한 경험들이 많았습니다만..) 기회가 되면, 더 공부해서 더 나은 사회복지사가 되리라 결심했던 거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렇게 대학원 진학으로 이어졌어요. 아쉽게도 일반대학원 석·박사 수업은 현장의 실천적인 경험들의 공유보다는 대부분 학문적인 지식 쌓기의 연장이었지만요.
질문처럼, 사회복지학계로 전향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과한 감이 있네요. 제가 대학 강의를 시작하면서 가장 중심을 두고 있는 한 가지는 사회복지현장과 지속적인 관계 맺기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천학문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전향보다는 영역의 확장 정도로 해두겠습니다.
◈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가장 즐거웠던 적이 있으신가요?
대학수업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 일이 참 많은데요. 성신여대 06학번들이 제 첫 제자였어요. 학생들이 오랫동안 기억해 주는 제 수업의 특징들이 몇 가지 있는데요. 그중 하나가 ‘출석체크’ 방식이에요. 그게 지금 제일 생각납니다.
우리 수업은 출석에 대답하는 방식이 좀 특별해요. 우리는 그것을 <감정 출석>이라고 하는데요. 이름을 부르면, “네” 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감정을 포함해서 대답해야 해요. 지금 한 번 해볼까요? “고이경!” 하고 부르면, “오늘 서사협 파워인터뷰에서 학생들과의 즐거운 경험을 질문 받았는데, 얘기할 게 너무 많아서 고민이 될 정도예요. 진짜 즐거운 에피소드들이 많거든요. 그 중에 감정 출석을 얘기해 보려구요. 등등~” 와 같이 대답하는 겁니다.
‘공감’능력은 사회복지사의 기본 자질이지요. 그런데, 내 마음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느끼고 이해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자기 마음을 탐색하고, 그걸 친구들과 공유하는 출석시간을 가져요. 저에게는 학생 모두의 이름을 부르고, 눈을 맞추며 대화한다는 의미도 있구요.
첫 몇 주간은, 감정 출석에 할 얘기를 적어오는 학생들도 종종 있어요. 부담을 호소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출석시간이 길어집니다. 할 얘기가 너무 많아서요. 심지어, 수업 시간의 1/4을 잡아먹는 날이 있기도 해요. 그날의 날씨 얘기부터 지옥철 등굣길, 소개팅 망한 사연, 주말 나들이의 설렘, 야간 아르바이트의 무용담, 새로 산 화장품 품평, 다이어트 성공, 용돈 부족 사태, 남친의 입영과 휴가까지.. 그 얘기들이 참 다양합니다.
졸업 후 몇 년이 지난 후에, 종종 문자로 감정 출석을 받게 되기도 해요. 며칠 전엔, “2016년에 사회복지 행정론 수업들은 13학번 000예요. 저 혼자 제주도 여행 3일째인데요. 지금 애월의 찐-파란하늘에 홀딱 반해서, 오랜만에 교수님께 감정출석을 남깁니다. 지금 먹고 있는 크림도넛의 사진도 함께 보내요” 라는 문자를 받았어요. 이럴 때 정말 눈물 나게 감동을 받습니다.
◈ ‘감정 출석’ 재밌는 출석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힘들었던 적도 있으셨나요?
짐작하시겠지만, 2년 동안 학교는 온라인 수업 했고 오프라인 시험 날에만 학생들과 만날 수 있었어요. 온라인 수업이 편한 것도 있긴 하지만, 상호작용이 적어진 건 분명 모두에게 아쉬운 상황입니다.
그것보다, 최근 학교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어색함(?)은, “선배·후배”라는 말이 거의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요즘 서열이 없는 호칭으로 “00씨~”를 더 많이 써요. 제가 ‘라떼~족’은 아닌데요. 학교에서 느껴지는 선후배의 정겨운 감성보다는, 그저 그룹 과제를 위해 정보를 나누는 동료같은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여럿이 함께하기보다, 혼자 하는 것이 익숙해지는 모습도 많이 보이구요. 혼밥(밥먹기), 혼공(공부), 혼강(강의듣기)도 많아요. 코로나 때문만은 아닌 거 같죠?
아쉬운 게 또 있네요. 제가 사회복지사 1급 시험과목들을 주로 강의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취업률·1급 국가시험 합격률 등이 학교평가에 영향을 미치다 보니, 수업이 자격증 학원처럼 교과서 위주로 진행된다는 점도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 최근 평생회원으로 가입하셨는데,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에 바라는 점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실까요?
왜 그동안은 생각을 못했는지... 늦었지만, 올해 1월에 평생회원이 되었어요. 신기하게도 매년 회비를 납부할 때와는 느낌이 많이 달라요. 지금의 제가 사회복지사로서 더 큰 자긍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느껴지거든요. 이유가 뭘까 잠깐 생각해 봤는데, 아마 “평생”이라는 말 때문인 거 같아요.
내 인생 전체가 ‘사회복지’와 함께하고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좋아요!
지금은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 교육사업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앞으로 여러 위원회 활동 등에 참여하게 되어, 더 돈독한 관계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 회원혜택이 다양하던데, 하나씩 활용해보겠습니다.
◈ 향후 이루고 싶으신 목표나 계획이 있으신가요?
저는 사회복지현장과 함께하는 연구자이자 교육자, 그리고 동료이고 싶어요. 그래서 최근에 여러 분야에서 근무 중인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존엄지향실천’에 대한 실천가 철학아카데미에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사회복지사 선서문의 첫 시작은 “나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인간 존엄성과 사회정의의 신념을 바탕으로 개인·가족·집단·조직·지역사회 전체 사회와 함께 한다.”인데, 저는 이제야 ‘존엄’의 뜻을 알기 시작했네요.
<존엄 : 인물이나 지위 등이 감히 범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엄숙함> 이 시작과 함께 저와 동료들의 존엄, 그리고 실천현장에서의 존엄에 대한 ‘캐물음의 시간’을 가져볼 계획입니다.
그리고, 제가 <프로그램기획 및 성과관리> 관련 강의와 컨설팅을 하다 보니, 사회복지현장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에 종종 관여하게 되는데요. 우리 현장의 프로그램들로부터 참여자 개인은 물론 지역사회에 전파할 만한, 진짜 유의미한 변화들이 많이 나오는데, 현장에서는 사업이 종료된 후에 이를 가시화하는 후속작업을 하는 게 조금 어려운 거 같더라고요. 저 역시 그 부분이 너무 아쉽다고 생각되어서 향후 현장의 여러 성과들을 묶어내는 작업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2021년 사회복지사 보수교육 우수강사가 되었는데요, 앞으로도 현장에 유익한 강의를 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