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변혁의 시대,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전진호(웰페어이슈 편집국장)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2년여 기간을 반추해 보면 기존 체계를 거대한 쓰나미가 싹 쓸고 가버린 느낌이다. 사회복지계도 ‘개점휴업’이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을 강요받으며 ‘멘붕’에 빠지기도 했으나, 빠르게 헤쳐나가는 중이다. 그러나 이 파고가 얼마나 크고 두려웠는지는 지난 10여 년간 좀처럼 확산되지 않던 ‘사회복지 스마트 워크’ 도입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며 체감하게 된다.
그동안 우리 사회복지 현장은 ‘면과 면이 마주해야지, 디지털로는 대체불가’라는 고정관념에 밀려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세상을 살짝 외면해온 듯하다. 하지만 코로나19의 공포는 전자결재, 클라우드 도입 등 비대면 상황에서도 업무를 진행할 수 있도록 개편하는 자극점이 됐으며, 비대면 상황에서도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도록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빠른 시간 안에 옷을 갈아입다 보니 부작용도 상당해 ‘간극’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중이다.
새로운 현상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사회복지 현장
디지털 신문물로 맹활약(?) 중인 키오스크의 대부분은 장애친화적이지 않으며, 어르신뿐만 아니라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출발점부터 막아선다. 인터넷 은행 등장 이후 은행 지점이 줄어드는 추세다 보니 스마트폰 뱅킹 사용을 강요받고 있으며, ‘위드 코로나’의 필수품으로 등장한 ‘백신 패스’도 내 폰에 설치하고 내보일 줄 알아야 한다. 실제로 ‘위드 코로나’ 선언 이후 강화된 보안조치에 따라 인증서를 내놓지 못하면 이용시설 출입이 제한된다. 복지관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분들이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 인증서 때문에 출입 못하는 웃픈 상황을 맞이했다.
‘디지털 소외계층’이라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계급이 탄생했다.
과거에는 ‘스마트’하지 않아도 조금 불편하면 그만이었으나, 점점 더 일상생활의 영위조차 어려워지고 있으며, 코로나19는 이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디지털 활용 능력에 따라 양극화 현상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그들이 공고하게 세운 벽은 한번 추락하면 좀처럼 올라서기 어렵게 하고 있다. 이를 온 몸으로 직면하고 있는 사회복지 현장은 이전부터 ‘디지털 포용’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있어왔으나, 기존 전달 체계에만 매몰돼 있다 보니, 안타깝게도, ‘선의의 동정’에만 기댈 뿐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다 지금의 상황을 맞이했다.
이런 현실을 마주하게 된건, 우울하지만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사회복지 현장은, 당사자 그룹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빈곤·어르신·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집단화해 구분했다면, 이제는 내가 ‘디지털 취약계층’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세상의 파도는 ‘디지털 쓰나미’ 앞에서 빠르게 흘러가는데 기존 틀에서 벗어나지 않아도 업무를 처리하는데 불편함을 겪지 못했으니 (디지털 세상을 맞이할) 준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전산화보다 사람의 손길이 더 정성스럽게 일처리 하는거라 여겼고, 업무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디지털 역량을 키우는데 취약했다. 여기에는 변화를 극도로 싫어하는 행정의 책임도 막대하다. 현장이 스마트해봤자 행정에서 아날로그를 요구하니 변화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낙담할 필요는 없다. 코로나19는 우리의 민낯을 드러나게도 했으나, 역설적으로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을 찾는데 길라잡이가 됐다.
‘디지털 복지’의 첫 단계는 공공 인프라 구축
코로나19 때문에 움직임이 멈춰 선 사회복지 현장은 크게 두 가지 문제가 대두됐다. 우선 이용인과의 만남이 사라진 공백을 당장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 이건 보조금 집행과도 연결돼 있어 큰 스트레스 요인이었다. 또 하나는 비대면 시대를 지탱할 수 있는 업무 시스템 구축에 대한 고민으로 정리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이용인과의 대면이 어려워지자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줌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영상 콘텐츠를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는 등 다양한 고민과 시도들이 이어졌다. 촬영·편집 장비를 구입하고, 기성 스튜디오 저리 갈 정도로 ‘고퀄’로 세팅한 기관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이를 운영할 전문 인력 양성에 대한 고민 없이 진행하다 보니 디지털 업무에 익숙한 직원에게의 업무 쏠림이 심각하게 발생하는 등 곳곳에서 문제점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 좌충우돌의 시간 속에서 많은 실무자들이 콘텐츠 구축 이전에 인터넷 데이터, 즉 인프라의 중요성에 눈을 뜬 것은 중요한 시사점이다. 제아무리 좋은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고, 줌으로 프로그램을 돌리고 싶어도 데이터를 마음껏 쓸 수 없어서 참여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개인이 알아서 할 몫’이라고 떠넘기길 수 있는 상황은 지났다. 디지털 복지 권리 보장 측면에서 최소한의 접근이 가능하도록 공공이 나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물론 지자체 별로 공공 와이파이망을 제공하고 있으나 범위를 확대하고, 품질을 높여야 한다.
공공이 해야 할 역할이니 민간은 그때까지 손 놓고 있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요즘 임대 아파트 등을 둘러보면 하루 종일 좁은 집안에서 갇혀 지내기 어려운 주민들이 단지 내 가게나 공원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는데 이들을 위한 ‘무선 데이터 공유 사업’부터 나서 보면 어떨까.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스폿을 정하고, 그곳에 무선 와이파이 존을 설치해 최소한의 데이터 걱정은 줄여보자는 거다. 어찌 보면 촬영 장비 구축을 위해 몇백만 원을 쓰는 것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스마트 보조 기기 지원, 업무 전산화 등 스마트워크 체계 선결과제
물론 인프라가 구축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접근 방법을 가르치고, 삶 속에서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교육과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려면 자연스럽게 기존의 ‘건물 중심’의 운영 체계에서 ‘지역밀착형’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위드 코로나’라 하더라도 과거처럼 강당에 수십 명씩 모아놓고 전달식 교육을 진행하기 어려울 테니 ▲소규모 ▲찾아가는 교육 형태로 전환될 것이며, 횟수가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다. 예를 들어 삼삼오오 키오스크가 설치된 식당을 찾아 사용법을 익힌 후 함께 식사할 수도 있고, 주민들이 있는 공원에서 유튜브 교육을 진행한 뒤 마을 주민이 설명하는 마을 이야기 영상 콘텐츠를 제작해 보는 일을 진행해 볼 수도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만남이 늘어날수록 주민들의 만족도는 높아질 것이다. 이때 디지털 기술은 현장에서 발로 뛸 사회복지인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 줄 것이다.
‘더 열심히 발로 뛰면 된다’는 의지의 문제로 될 일이 아니다. 헌신과 희생은 한계가 있고, 사회복지인이 부담감 없이 현장으로 나갈 수 있는 디지털 디바이스 지급과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지역에서의 활동을 마무리한 후 행정업무를 위해 사무실로 돌아오는 대신 현장에서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시스템 구축과 아울러 필요한 스마트 기기 제공, 디지털 디바이스를 원활히 활용할 수 있는 역량 강화 교육 등이 이뤄져야 한다.
느슨한 연대의 힘이 진가 발휘할 것
이 과정에서 느슨한 연대의 힘은 큰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막대한 자본과 인력이 있다면 모를까, 기관 단위로 각각 디지털 역량까지 보유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고, 자원 활용을 위한 지역 내 연대나 유형별 네트워크 구축이 이뤄져야 한다.
일례로 코로나19로 거리 두기 격상에 따라 사회복지 기관 이용이 중단되자 유튜브 계정을 운영하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하지만 비전문가들이 만든 영상이 좋은 반응을 얻기 힘들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동력이 떨어지자 흐지부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옆 기관과 우리 기관과 제작하는 영상이 똑같은데 굳이 같은 걸 만드는데 이중의 에너지를 쏟아야 하냐는 설득력 있는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온라인의 세상은 어느 계정보다 어떤 콘텐츠가 중요하다. 공동의 계정을 만들고, 서로의 에너지를 모아 콘텐츠를 생산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예를들어, 신체장애가 있는 이를 위한 물리치료 영상이 필요하다면 기관마다 각각 제작할 게 아니라 서로 힘을 모아 ‘제작 품앗이’를 해도 좋고, 함께 기획한 내용을 외부 펀딩을 받아 전문가들이 필요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도 소비자 욕구에 부합할 것이다.
파편화된 콘텐츠를 모으고, 아카이빙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CUG(closed users group) 서비스 구축에 대해서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쉽게 설명하자면, 엘리베이터나 편의점 앞, 버스 의자에 부착된 화면에서 특정 영상을 반복해서 재생되는 걸 쉽게 볼 수 있는데, 이걸 티브이로 확장시킨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KT 등 IPTV 망을 갖고 있는 업체를 통해 채널 번호를 부여받으면 자체 방송국을 구축할 수 있다. 실제로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종교활동이 어렵게 되자 이 CUG 서비스를 활용해 예배와 찬양, 소식 등을 안방에서 누릴 수 있도록 한 사례가 있다.
지역 또는 유형별로 모여 콘텐츠를 수집 및 제작하고, 이걸 CUG 서비스를 활용해 이용자 가정에 전달할 수 있다면 지금의 콘텐츠 수급에 대한 갈증은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모금도 진행할 수 있고, 광고나 홍보채널로 활용할 수도 있다.
디지털, 필요한 만큼 취사선택...두려움 접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코로나19로 만남이 멈춰 선 세상을 마주한 사회복지계는 2년여간 대응 방법을 찾기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을 ‘방호벽’ 정도로 이해해서는 대안을 찾기 어려울 거라고 본다.
기술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소외받는 이들을 대량으로 양산할 것이며, 이 때문에 ‘디지털 포용’은 시대적 과제가 될 것이다. 이를 마주한 사회복지계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지만, 나조차 잘 모르고 활용하지 못하는데 그들을 지원하겠다는 것은 ‘근자감’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개인의 능력치에만 맡긴다면 현장 갈등만 부추길 것이다. 사회복지사 보수교육 뿐만 아니라 보수교육 대상자가 아닌 현장 활동가들도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할 수 있는 교육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교육도 거금을 들이거나 전문 업체에 맡겨야 할 범주의 디지털 디바이스 활용법이 아니라 ‘손안의 디지털’ 스마트폰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가르치고, 익숙해져야 한다.
우리 앞에 펼쳐진 디지털 세상은 새로운 것과 마주하는 일이다. 새로운 것을 마주하고 시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어려움과 혼란,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고, 가던 길을 되돌아와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실패를 두려워하기 보다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양한 시도들에 도전할 때다. 실패해도 다시 돌아가면 된다는 열린 마음을 갖고 주민과 나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취사선택해 활용하면 그만이다.
이제 터부시하거나 막연한 두려움은 접고, 열린 마음으로 주민들 옆에 바짝 붙어서야 할 때다.
이때 디지털 기술은 그들과 더욱 밀접하게 접할 수 있게 해 줄 방호복이 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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