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아동센터, 안녕하십니까?
성태숙(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센터장)
이제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세가 조금 수 그러 든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조금만 방심하면 금방 또 일이 터지곤 하는 게 사실이다. 한 번 씩 주변에서 확진자가 나왔단 소식이 들려오면 조금 풀어졌던 마음이 일순간 다시금 공포와 두려움에 얼어붙는다. 좀처럼 쓰러지지 않고 뒤를 쫓아오는 좀비 무리처럼 끝도 없이 다가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포에 한 번씩 마음이 한없이 초조해지곤 한다.
그래서일까? 최근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언제쯤이면 백신 접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점점 더 뜨거운 관심을 얻고 있다. 비슷한 직군의 종사자들을 위해서는 속속 접종 예고가 발표되고 있는데, 지역아동센터만은 감감무소식이니 애를 태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정부는 이번 문제에서마저 지역아동센터를 제대로 챙길 마음이 없나 보다’하는 좌절감만 커져 간다.
복지부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백신 수급이 어려워 그런 것인지 양해를 구한다고는 하지만 그런 말로 현장을 다독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럼 그렇지. 인건비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기본적인 문제 하나도 제대로 해결해 주지 않는 정부인데 백신조차 어련하겠어....’ 어느덧 냉소와 좌절감에 종사자 마음이 시퍼렇게 멍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은 이런 케케묵은 속앓이에만 집중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마음을 써야 하는 다른 일들도 차고 넘쳐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의 시행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차량 도색이나 변경에 드는 막대한 비용이 채 마련되지 않았던 것이다. 협의회를 중심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한바탕 난리를 친 후에야 겨우 문제가 조금씩 해결되는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차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서울은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지만, 아동들의 귀가에 차량을 꼭 이용해야만 하는 지방의 지역아동센터들은 아직도 속을 끓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이번에는 소방법이 개정되었다. 이에 따라 3층 이상의 건물에 위치해 있는 지역아동센터들은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하고, 건물 외벽이 가연성 외장재로 되어 있는 경우 이를 변경해야 하는 문제에 당면하게 되었다. 지역아동센터는 시설을 임대하여 운영하는 곳들이 많은데, 시설의 소방설비 문제는 차량 문제와는 또 달라서 지금 있는 시설에 지원을 받아서 설비를 완료한다고 끝이 나는 문제라고 볼 수 없다. 만약 임대를 한 지역아동센터가 이전을 하게 되면 새로운 건물에 소방 설비가 되어 있는지가 다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물을 임대할 때마다 자칫 막대한 비용을 들여 소방 설비를 계속 해야 하고, 또 이는 차량처럼 쉽게 이전이 가능한 물품도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 지원을 받아내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지역아동센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건물에 소방 설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소방법 개정안에 의해 임대인들은 상당한 금액의 과태료를 부과 받게 된다. 과연 임대인들이 그런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역아동센터에 계속 시설을 임대하려고 할지 미지수다. 그렇다고 시설을 임대해 운영하고 있는 지역아동센터들이 매번 막대한 부담을 감수할 여유가 있다고 볼 수도 없으니 상황을 알면 알수록 걱정이 커져가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더해 6월부터 전국적으로 임대차 신고제까지 실시되고 있으니, 지역아동센터는 앞으로 어쩌면 임대 시설을 구하지 못해서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미 청소년보호법 때문에 시설을 설치할 경우 반경 50미터 이내에 청소년 유해시설이 없는 청정지역을 구하느라 진땀을 빼야 하는데, 거기에 소방법까지 한몫을 더하니 그저 한숨만 나오는 지경이다.
서울 지역의 지역아동센터들은 이런 심각한 문제를 앞두고 있지만, 효과적으로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있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단일임금제로 인해 법인이 운영주체로 있는 지역아동센터의 종사자들과 개인이 운영주체로 있는 지역아동센터의 종사자들이 각기 서로 다른 처우에 놓이게 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다 같은 처우를 받지 못할 바에는 단일임금을 받지 않겠다고 했어야 하나 간간이 뒤늦은 후회를 할 만큼 현장의 상처는 크고 깊다.
뜨거운 한여름이 다가오고 있지만 지역아동센터를 둘러싼 제도적 환경은 사방이 이렇게 꽁꽁 얼어붙은 황량한 겨울 들판과도 같아서 때로는 속절없는 속울음이 치솟아 오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어려움을 잘 견뎌내고 아동 돌봄이 보다 나은 제도로 완성되는 그날까지 서로를 믿고 전진해나갈 것입니다...." 등등 이런 말을 해야겠지만 차마 그런 입 발린 소리를 하지 못하겠는 게 지금의 솔직한 심정이다.
근 20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 동안 마치 무슨 사회의 기생충 마냥 그런 취급을 당하는 것에도 이젠 지친 게 사실이다. 이런 소리를 한다면 “또, 또 그런다...” 하고 혀를 찰 사람들이 적지 않을 줄 잘 알지만, 위축되고 옹졸한 마음은 한 번씩 이런 뒤틀린 소리를 내지르게 만든다.
솔직한 마음은 그저 하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싶기도 하다. 그런 마음을 먹고 나니,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래도 아동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소박한 용기가 겨우 솟아오르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제도적 환경은 쉽지 않겠지만, 자신이 속한 집단을 사회가 환대하지 않는 것만 같은 그런 소외감을 느끼게 될 때 인간이 얼마나 한없이 위축될 수 있는지 뼈아프게 느껴온 세월들이 다시금 아려온다.
그런 우리의 아픔을 잊지 않고, 그런 세월에 지지 않고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틸 수 있다면 우리도 아마 내일을 다시 보게 될까? 그런 가녀린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하는 오늘이 많이 버겁다. 그런 외롭고 쓸쓸한 마음은 절실하게도 혼자가 아니란 간절한 확신에 메들리고 싶어 한다.
성태숙 선생님...
이렇게 어려운 상황인지 몰랐습니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