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째 결혼 그리고 9번째 새 생명
임한길(성심모자원 원장 /
서울시한부모가족복지시설협회 회장)
지난 2020년은 참으로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한 해였던 것 같다.
봄의 시작을 알려오면 원내 아동들을 데리고 남산타워, 어린이대공원, 전망대 등으로 나들이하고 생일잔치, 직업체험 등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예년과는 달리 거의 모든 행사를 치르지 못했다.
원내뿐 아니라 이미 모자원을 나간 가정들과 함께하던 기차여행과 외식 프로그램 또한 지난날의 추억이 되었다. 후원처와 개인 후원자들도 많이 위축되어있는 상황이고 매월 어머니들과 함께 진행하던 부모교육을 통한 정보접근 및 인식개선 프로그램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렇든 힘든 상황이라 해도 내가 품은 희망은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4년 전 진행했던 번외(특별) 부모교육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우리는 예순이 넘은 싱글맘 여배우를 초청하여, 싱글맘이 새로이 가정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일깨워주는 주제로 강의를 의뢰하기로 했다. 부탁을 받은 여배우는 처음엔 조금 망설이는 듯 했지만 이내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여 모자원을 방문하였다. 자신에 대한 소개를 간단히 마치고 지난날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히 이어 갔다.
그녀의 나이 40세에 아이를 낳았으나 가정을 이룰 수 없는 처지 때문에 배우로서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미하여 오로지 아이만을 위해 열심히 살아냈던 이야기와, 그 후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단란한 새 가정을 꿈꾸어 보기도 했지만 그 무렵 아이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성인 남자에 대한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고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세월이 좀 더 흐른 뒤에 아들이 성인이 되어서 "엄마! 엄마도 이제 데이트도 좀 하세요."라며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했지만 그땐 이미 자신이 할미꽃이 되어 있더라며 아직 좀 더 젊은 때 아빠가 있는 가정을 아이에게 선물하라는 메시지로 강의를 마쳤다.
한부모가족지원법 제2조에 의하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한부모가족의 권익과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여건을 조성하고,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예방하고 사회구성원이 한부모가족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교육 및 홍보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있다. 또한 2조 6항에는 "모든 국민은 한부모가족의 복지증진에 협력하여야 한다."라고 쓰여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아직도 한부모가정은 우리사회로부터 소외됨으로써 많은 가정들이 그로인한 외로움과 무기력증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 겨울의 끝자락에 결혼식에 다녀왔다. 코로나19 이전에는 간호조무사로 일하면서 매 주말이면 모자의 친밀감과 소통을 위해 아이와 전철을 타고 가까운 곳으로 여행도 하며 열심히 살었던 어머니의 결혼식이었다. 행복해하는 신랑과 함께 눈부신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이 엄마의 하염없는 눈물로 이어지던 그 결혼식은 나에게도 진한 감동의 시간이었다.
다음날 이상의 업무로 돌아왔을 때 문득 지난 몇 년간 이루어낸 새 가정과 새 생명을 세어보고 싶어졌다. 어제 혼례가 지난 4년간 성심모자원과 함께한 결혼이었고 지난해 8월에 태어난 새 생명은 9번째의 귀한 아이였다. 아이의 생부가 임신 중에 자신을 떠나고 부모 형제에게서까지 버림받았음에도 아이를 지우지 않았고, 낳아서도 베이비박스에 버리지 않았으며, 입양기관이나 보육원에 보내지 않은 훌륭한 이름 '미혼모'!
나는 오늘도 그늘과 함께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한부모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해 본다.
본 게시물은 성심모자원에서 발행하는 성심드림빌(2020년 하반기 통권 12호) 중, 일부를 발췌하여 글쓴이의 허가를 받아 게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