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노동자의 적정임금 논의는 초기업교섭 활성화로부터1)
민주노동연구원 박영민
‘사회복지사 등의 지위 및 처우 향상을 위한 법률(이하 법률)’이 제정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지위와 처우 향상은 요원하다. 이 법률에서 규정하는 ‘사회복지사 등’은 사회복지사업법에 기초한 사회복지법인과 사회복지시설에 종사하는 사회복지사를 비롯한 몇몇 직종의 노동자들이다. 매년 보건복지부가 권고하는 인건비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에 대한 준수율은 50% 미만2)으로 나타난다. 가이드라인의 임금 기준 자체도 하위 직급의 경우 몇몇 시·도의 생활임금 수준보다 낮다.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적정 임금 수준의 목표는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보수 수준‘이지만, 임금체계가 서로 달라 목표 달성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이렇게 임금 수준이 낮으니 이직률이 높고, 사회복지서비스의 질적 향상에도 악영향을 준다.
노사관계 없는 사회복지사 임금 결정의 한계
핵심적인 원인은 임금 결정의 구조적 메커니즘에 있다. 특히 노사관계 없이 결정되는 임금체계가 가장 큰 문제이다. 임금의 결정 요인은 일반적으로 직무, 연공, 업무성과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의 특성, 노사 교섭구조를 비롯한 노사관계 등으로 정의된다.3) 고용을 근거로 사용자-노동자 간의 의사결정과 관련된 사회관계를 의미하는 노사관계(Industrial relationships)에서의 핵심은 의사결정이다. 그런데 가이드라인은 의사결정 단계에 노동자를 포함하지 않는다. 정부 부처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식인데다 철저히 정부 예산편성 및 집행 지침에 의거하여 결정된다.
이렇게 취약한 임금 결정 구조의 배경에는 모호한 고용관계의 문제가 있다. 사회복지시설 노동자의 사용자는 불명확하고 모호하다. 노동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각종 인사와 업무를 지휘하는 시설 또는 법인의 장은 형식적인 사용자에 불과하다. 임금을 비롯한 대부분의 노동조건에 대한 결정 권한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가진다. 그리고 사업안내, 지도·감독, 시설평가 등의 제도를 통하여 업무 수행과정의 상당 부분을 지휘하고 감독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가히 실질적인 사용자에 해당한다. 통계상으로 대부분 정규직인 노동자들이 실제로는 공공부문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인 셈이다. 이러한 관계는 지자체가 설치·운영하는 국공립시설뿐만 아니라 민간이 설치·운영하여 공공 서비스 및 프로그램 사무에 대한 보조금을 받는 이른바 민간직영시설의 경우에도 무관하지 않다.
간접고용의 흔한 폐단으로 거론되는 노동기본권의 제한적 적용, 노동조건 악화 등의 문제는 사회복지 노동현장에도 고스란히 자리 잡았다. 노동자들의 임금 교섭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시설 운영비용 중 정부 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95.5%에서 100%나 되는 상황에서 시설 내 교섭으로는 임금 사항을 논할 수도 없다. 더구나 지자체와 중앙정부를 상대로 한 교섭은 사용자성 불인정으로 성립조차 되지 않는다. 작동하지 않는 노사교섭 체계는 임금과 노동조건에 있어 원/하청 사용자의 매우 쉬운 책임 회피와 전가를 가능하게 한다. 하물며 시설 내 교섭으로 정한 사항에 대해서도 지자체 지침의 내용을 상회한다는 이유로 노동조건의 불이익 변경을 강요받기도 한다.
이해당사자와 노동조합을 배제한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개선위원회‘
한편, 지난해 법률이 개정되어 중앙-시·도-시·군·구 차원의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개선위원회(이하 위원회)’ 조항이 신설됐다(법률 제19296호, 2023.3.28., 일부개정). 추상적 선언 정도에 불과한 법률의 낮은 실효성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위원회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위원회는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개선과 적정 인건비 기준을 주로 심의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가이드라인 적용 대상이자 이해당사자인 사회복지시설 노동자는 당연히 위원회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나 중앙(보건복지부)의 위원회는 노동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법률 시행령이 정한 요건은 다음과 같다. 위원회는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개선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①),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단체(②)·사회복지법인 등의 장으로 구성된 단체 등에서 추천하는 사람(③), 처우개선 관련 시민단체 및 노동관계 법령 전문가(④), 처우개선 업무 담당 공무원 등 15인 이내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임명·위촉하는 것이다(법률 제3조의 2, 시행령 제4조의 2). 그런데 구성 현황을 보면(보건복지부, 2022.12.16.), ①에서는 연구기관 및 중앙사회서비스원의 임원 또는 전문가, ②에서는 사회복지사협회와 사회복지교육협의회의 임원, ③에서는 사회복지 직능단체와 사회복지협의회의 임원들이 위촉되었음을 알 수 있다. ①에서 ③까지의 위원들이 당사자의 지위를 가지거나 가깝다고 보기 어렵다. 게다가 ④에서 위촉된 시민단체는 처우개선과는 관련성이 적은 이용자 단체이며, 법령 전문가의 몫은 생뚱맞게도 모 외국인 투자기업의 법무팀 소속 변호사에게 돌아갔다.
더욱 이상한 점은 사회복지시설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이 위원회에 단 한 명도 위촉되지 않은 사실이다. 민주노총, 한국노총의 가맹·산하 단체에는 ‘사회복지사 등’을 주요 가입 대상으로 삼는 노동조합들이 여럿 있다. 민주노총의 경우 법률 시행령 개정에 관한 의견 수렴 기간에 전국단위노동조합 또는 총연합 노동단체의 추천을 요구한 바 있었고(2022.3.4.), 법률 시행 이후 보건복지부가 민주노총에 위원 추천을 요청함에 따라(2022.9.22.) 관련 위원을 추천하기도 하였다(2022.9.29.). 그러나 결과적으로 위촉되지 않았다. 이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해명은 그야말로 변명에 가깝다. 조합원의 수가 적어서 그랬다는 것이다. 정말로 보건복지부가 위촉과정에서 ‘사회복지사’ 등에 해당하는 노조 조합원의 수를 집계하였는지도 의문이거니와, 장담컨대 실제로 위촉된 위원들이 속한 단체의 회원 수와 견주어 볼 때 조합원의 수는 결코 적지 않다. 이러한 대표성의 차원은 물론이고, 처우개선 관련 전문성 차원에서도 노동조합을 배제할 이유가 딱히 없다. 다른 행정기관 위원회의 일반적인 구성과 비교하면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예컨대 동수의 사용자위원과 노동자위원(또는 가입자대표), 공익위원으로 구성되는 고용노동부 산하의 최저임금위원회나 보건복지부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와 너무나 대조적인 구성이지 않은가.
사회복지사업에 초기업교섭 구조를 마련하자
다시 임금 결정 논의로 돌아와서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하자면, 바로 사회복지사업 분야에 초기업교섭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세 규모 사업장이 많고 사실상 공공부문 간접고용에 해당하는 사회복지 현장은 집단적 노사관계가 형성되기 어려운 구조이다. 이러한 불안정 노동자가 처한 노동시장에서의 불평등과 배제를 해소하기 위한 최선의 대안은 사회복지사업 분야를 망라하는 초기업교섭 구조를 형성하고 촉진하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마련된 단체협약의 효력을 업종·지역에 확장하는 하는 것이다. 이처럼 초기업교섭 활성화와 단체협약 효력 확장은 불평등과 양극화를 극복하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4)
물론 이를 위해서는 중앙 및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결단과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동안 사회복지시설 노동조합의 중앙/지방 정부를 상대로 한 교섭 요구는 현행 법령을 근거로 번번이 거절되었다. 현행 노조법 개정 등 법제 개선이 필요하겠으나, 사실상 원청에 해당하는 중앙/지방 정부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당장이라도 실현할 수 있는 교섭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할 수 있다. 유사한 고용 형태를 가진 타 업종·부문 등의 국내 사례를 참고할 수도 있고, 산업·직역별 단체협약이 임금 결정에 절대적 영향을 주는 호주·독일 등 해외 사례를 들여다볼 수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가이드라인의 적용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사회복지·돌봄 노동자들을 고려해야 한다. 같은 사회복지시설에 근무하면서도 정부가 시행한 프로젝트성 사업이거나 모금기관의 지원사업이라는 이유로 더 열악한 임금을 받는 경우가 많다. 국가보훈부의 보훈복지서비스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는 다른 중앙행정기관 관할이라는 점 때문에 가이드라인 적용이 되지 않고 있다.
인구 구조 변화, 돌봄 수요 증대, 사회서비스 확대 등으로 사회서비스·돌봄 노동자의 수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대부분 별다른 임금체계가 없으며 서비스 수가 기준 또는 최저임금 기준에 의해 임금이 결정된다. 그러다 보니 가이드라인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의 저임금이 형성된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사회복지사 등’과의 공통된 특징은 첫째, 사회적으로 낮은 인식과 이로 인한 노동의 저평가가 저임금 상황을 고착한다는 점이며, 둘째, 집단적 노사관계를 성립하고 전개하기 힘든 노동환경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초기업 교섭 형태의 교섭구조가 복지·돌봄 분야에 도입될 수 있도록 하는 치열한 고민과 싸움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1) 이 글은 2023.06.20. 한국사회복지사협회가 주최한 ‘사회복지사 임금수준 어디까지 왔나’ 토론회에 제출한 토론문을 수정·보완한 것임.
2) 김유경 외(2020). “사회복지 종사자의 보수수준 및 근로여건 실태조사”. 보건복지부(연구기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3) 정경은·이승협·김하경·정기호.(2022). “임금체계 정책 변화와 노동의 대응”. 민주노총 총서, 2022-13.
4) 이창근·권혜원·김미영·박주영·정경은·정흥준(2021). “초기업교섭과 단체협약 효력확장제도 재조명 : 비정규직·작은사업장 등 불안정 노동자 권리보장 관점에서”. 민주노총 총서 20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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