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사회복지사회 창립 7주년 기념 세미나 축사 (2022.09.19)
이혜경 연세대 명예교수(전 여성재단 이사장)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소개받은 이혜경입니다.
먼저 한국여성사회복지사회 창립 7주년을 축하합니다.
그동안 코로나 팬데믹의 어려움을 견디면서도 꾸준히 지속되어 온, 양옥경교수를 비롯한 한국여성사회복지사회 리더십의 열정과 노고에 감사와 축하의 말씀 드립니다. 또 이번 7주년 기념 세미나는 국민의 힘의 조은희 의원실이 함께 해주셔서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7년 전 한국여성사회복지사회를 창립해야 했던 (2015년) 당시 비장했던 상황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복지사의 3/4이 여성인데 한국여성사회복지사회가 따로 필요했다는 사실은 우리 역사의 아이러니였습니다. 인간 개개인의 존엄과 사회정의 구현을 목표로 하는 사회복지 실천 현장/커뮤니티의 젠더감수성이 어떤 정도였는지, 놀라운 충격이었습니다. 여성 사회복지사라는 이름으로 연대의 한목소리를 만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사건은 2019년이 되어야 승소할 수 있었고, 2015년에 창립한 한국여성사회복지사회는 뚜벅 뚜벅, 오늘 7주년을 기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7년 동안, 한국여성사회복지사회는 꾸준히 여성 사회복지사들의 인권보장 활동과 여성리더교육, 토론회, 특강, 뉴스레터 발간, 사회복지사 근무환경실태조사 등으로 훌륭한 면모를 갖춘 애드보커시 단체로 자리잡게 되었음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매달 발간되는 뉴스레터 내용이 update 된 알차고 수준있는 학습 자료들인데 놀라고, 2017, 2019년에 이어 세 번째 실시된 사회복지사 근무환경실태조사는 앞으로 좀 더 본격적으로 더 정교하게 발전시켜 한국여성사회복지사회의 “관점”이 있는 조사연구 브랜드로 가져가면 좋겠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한국 사회복지 실천 커뮤니티에 커다란 기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2019년 7월 한국여성사회복지사회에 와서 새내기 사회복지사들에게 “복지국가의 재편과 여성주의” 라는 제목으로 강의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복지국가는 재편되고 있습니다. 서구의 복지국가를 탄생시키고 지지해온 2차대전 후의 가족구조, 노동시장 구조, 인구구조, 시장경제구조가 단절적으로 전환되고 융합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탈산업화, 4차 산업혁명, 지구화, 신자유주의, 탈가족화, 양극화, 신사회위험,인정의 정치 등 수많은 키워드들로 이러한 대전환을 설명하고 대응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후 복지국가를 계승할 결정적으로 합의된 새로운 질서는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낸시 프레이저의 책제목처럼 “낡은 것은 가고, 새 것은 아직 오지 않은” 위기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The Old is Dying and the New cannot be Born-원래는 그람시의 wording)
그런데 여러분, 많은 연구자들이 복지국가 재편의 동력은 페미니스트들의 복지국가 비판담론에서 찾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의 복지국가 비판 담론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하여 페미니스트들의 비난을 받았던, 복지자본주의 유형론으로 유명한 에스핑 앤더슨 조차도 종국에는 인정한 셈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성분업적, 남성부양자 가족모델이 더 이상 지배적인 가족모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성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여성의 고용이 가족복지를 향상시키고, 여성의 노동시장진출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여성의 고용은 가족과 노동시장 내에서의 새로운 젠더계약을 요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위험, 특히 돌봄의 위기를 창출합니다. 인류 사회의 기본조직인 가족의 행태와 젠더관계가 변화하는 것입니다. 일 가정 양립정책이 모든 복지국가들의 재편 노력의 중심으로 옮겨 와 있다 해도 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일 가정 양립의 가치, 이인 부양자-돌봄자 가족모델을 받아들이고 내재화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사회에서도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닙니다. 지난 2022년 3월 영국에서 출판된 The Flexibility Paradox 라는 책은 방대한 실증연구 자료들을 통하여 서구 선진 복지국가들에서도 work-life balance를 위해 도입된 유연노동 제도가 노동자의 well-bing과 젠더평등을 제고하는데 실패하고있고 오히려 gender gap을 확대시켰다는 결론을 보여주고 있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여성이 대다수인 한국의 사회복지 실천 커뮤니티에 여성사회복지사회가 왜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아직은, 아니 앞으로도 쭈욱 필요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복지국가재편의 거시적인 세계사적 흐름의 통찰과 그 안에서의 젠더평등과 돌봄 사회의 관점이 한국 사회복지현장에 매우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한국여성사회복지사회는 일터에서의 여성사회복지사들의 인권옹호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복지 실천현장에, 그리고 사회복지 정책현장에, 여성주의적 관점, 성평등 관점의 주류화를 위한 노력을 시작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도를 보다 정교하게, 보다 임팩트 있게, 본격 궤도에 올려 놓으려면, 지속적인 열정과 배가된 노력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물론 이 길은 남성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가야 합니다. 다만 이 과제를 남성 사회복지사들에게 전적으로 맡기기에는 아직은 이르다는 생각입니다.
앞으로 또 다른 7년, 또 다른 10년의 뚜벅 뚜벅, 한국여성사회복지사회의 발전이 곧 대한민국 사회복지의 발전이라는 믿음과 희망을 담아, 한국여성사회복지사회 창립 7주년을 축하하는 말씀에 가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