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 효 정
(성민종합사회복지관)
기만을 당하다
1999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만20년을 맞이하는 사회복지시설평가,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사회복지 선진지라 일컬어지는 서울에서의 사회복지시설평가가 위기를 맞은 듯 보인다. 쉽게 ‘질적 평가’, ‘평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 일컬어지던 ‘서울형 평가’는 지난 3월 20일, 피평가시설 당사자에게조차 전달되지 않은 최종평가서가 평가주체들에 의해 ‘대국민 알 권리’라는 명분을 앞세워 보건복지부 및 서울시 홈페이지에 여과 없이 게시되므로 2018년 피평가시설(사회복지관, 노인종합복지관, 장애인소규모시설)뿐만 아니라, 같은 평가주체로부터 평가를 받는 다른 많은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들의 공분을 샀다.
이미 아는 바와 같이, 기존 보건복지부의 양적 평가의 한계를 보완하고, 적어도 서울에서는 더 이상 변별력 없음을 핑계 삼아, 복지 선진지-서울의 자부심으로 만든 ‘야심작’이 일명 ‘서울형 평가’였다. 이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으나 어찌되었든 결국 피평가시설들이 받게 될 평가이기에, 서울형평가의 이상적이고 주관적인 평가지표와 평가방식에서 어떻게든 객관성을 담보해 내고자, 그동안 현장은 시범평가라는 엄청난 일(3년 동안 2번의 평가를 받은 셈)도 마다 않고 다방면으로 서울형평가 개발에 동원되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했다.
그러나, 나에게 난도질할 검을 내가 다듬어주고 있는 슬픈 처지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든 무능으로 받아들이든 간에, 또한, 협조해야 하는 그 과정이 거버넌스라 불리든, 절차적 동원이라 불리든, 민주적 의견수렴이라 불리든 간에 매번 집요하게 따져보지 않고 순진하게 협력했던 댓가는, 분노를 넘어서 할 말을 잃을만한 결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간 표면적으로 예의를 차리고 파트너 운운했다고 해서 우리사이가 평가자-피평가자 간이라는 사실, 그래서 명백한 ‘갑을관계’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는 듯, 우리가 협력했던 상대가 우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더 숨겨볼 수 없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동안 두 주체의 관계 안에서 그 존재는 있었으나 상대가 아니라고 하니 딱히 증명할 길이 없었던 실체가 명백하게 확인된 셈이다. 갑질 말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평가는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였다. 평가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평가내용과 방식이 평가의 본질을 벗어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평가본질은 국가보조금을 투명하게 사용했는지 여부와 일정수준 이상의 복지수준을 담보하고 있는지 여부 확인에 있어야 하지만 경쟁과 이를 조장하기 위한 인센티브, 서열화로 왜곡되었고, 변별을 위해 지표는 끊임없이 고도화되었으며, 그로 인해 마치 봉지 안에 담긴 주인공이 과자인지, 질소인지 알 수 없는 질소 과자처럼, 평가발전을 위해 복지를 하는 것인지 복지발전을 위해 평가를 하는 것인지 본질을 알 수 없는 주객전도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기존 보건복지부 평가로 해결되지 않는 ‘변별력’을 위해 여전히 또 다른 ‘경쟁모델’을 만든 것이다.
사회복지시설 평가문제의 핵심은 근거 없는 ‘경쟁과 서열화’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변별’을 핑계삼아 끝도 없이 추구하는 평가지표 고도화이다. 평가의 근거인 「사회복지사업법 시행규칙」 제27조2의 2항을 보면 시설의 평가기준은 서비스 최저기준을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평가방식이 경쟁적이고 서열적이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없을 뿐만 아니라 기준점이 ‘서비스 최.저.기.준.’ 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평가는 어떠한가? 피평가시설들이 최저수준이 아니라 최고수준으로 평준화된 것을 이유 삼아 더 고도화된 평가지표로 평가의 ‘의미’와 ‘변별’을 찾고자 애쓰고 있다. 평가제도의 존재감을 위한 평가, 평가주체의 존재감을 위한 평가를 하고 있는 꼴이다.
그렇다면 문제적 ‘경쟁과 서열화’는 어떤 근거로 평가체계에 도입되었을까? 누구의 열망인가? 복지재원의 원천이자 복지주체인 국민? 예산배분의 최종 방망이를 쥔 시의회? 시설관리감독자 역할을 하는 서울시? 평가업무대행을 맡은 서울시복지재단? 적어도 가장 발언권이 커 보이는 국민의 열망은 아닌 것 같다. 나부터, 내가 낸 세금이 쓰이는 공공기관이 비리와 방만함으로 운영된다면 마땅히 분노하겠지만, 정반대로 운영성과를 입증하겠다며 해야 할 주 업무보다 평가와 지도감독 대응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로 화날 일이기 때문이다.
또 무엇이 문제였을까? 민간에게 갑이었던 그들 위의 수퍼갑이 문제였을까? 혹은, 이 정도까지의 과열경쟁은 평가주체의 의도가 아니며 피평가시설들이 자초한 일이므로 당사자들이 문제인가? 그것도 아니면, 경쟁을 전제한 평가를 문제 삼으니 자본주의사회 그 자체를 문제 삼아야한다고 할까?
평가, 어디로 가야할까
평가의 폐해를 온몸으로 겪다 지쳐서 ‘정말 이 방법이 최선인가’를 물으니, 혹자는 ‘법 때문에 평가를 없앨 수는 없으니 고쳐 써야 한다’ 말하고, 혹자는 ‘법이 이상하면 법을 바꾸면 된다’ 말하고, 혹자는 ‘그래서 평가 말고 인증제로 가야한다’ 말한다. 그 이름을 ‘평가’로 부르든지 ‘인증제’로 부르든지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국공립어린이집처럼 ‘인증제’라 부르지만 평가보다 더 지독한 경쟁을 조장하는 내용이라면 ‘인증제’도 대안이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내용이다.
기존의 경쟁평가방식은 이미 그 역할을 다했다. 앞으로 제안되어야 하는 새로운 평가(혹은 인증제) 방식은 경쟁과 서열화를 배제하고, 단어가 가진 뜻(평가하다: 일정한 기준으로 따져서 그 가치나 수준을 판단하다) 그대로, 법 그대로, 최저기준 이상의 질이 담보되는 복지실천인지, 재정과 운영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확보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면 그것으로 충분히 본질적이다.
그리고 피평가자들인 우리는, ‘평가’에 있어서 경쟁과 서열화는 내포해야 할 당연한 전제조건이 아니며, 평가=경쟁이라는 등치의 관계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한다. 보조금과 재위탁을 볼모 삼아 인센티브와 순위로 경쟁을 조장하고 그것으로 민간을 조정/통제하려고 하더라도 이제 더 이상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왜 이 방식이 당연한가, 왜 이 방법 뿐인가 질문해야 한다. ‘경쟁’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평가 혹은 다른 어떤 이름을 걸더라도 ‘지금과 달라질 수 없음’ 또한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한다. 경쟁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 폐해를 이미 온몸으로 경험하지 않았는가.
풀어야할 수많은 과제 앞에서 모든 99들의 마스터키는 ‘연대’ 뿐이다. 99가 1을 이기지 못하는 이상한 수식이 성립되는 이유는 그 99가 끊임없이 1:99로 분열하기 때문임을 기억하고, 99들은 나와 내기관의 안위뿐만 아니라 99인 민간사회복지계 전체의 안위를 염두에 둔 행보를 해야 한다. 99가 없는 1은 의미가 없듯이 ‘우리’라는 환경이 없는 ‘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위탁과 보조금이라는 생존의 문제 때문에 연대하지 못한다는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끝.
■사회복지사업법 제43조의2 (시설의 평가) ①보건복지부장관과 시·도지사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시설을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표하거나 시설의 감독·지원 등에 반영할 수 있으며 시설 거주자를 다른 시설로 보내는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 ■사회복지사업법 시행령 제25조 (권한의 위탁) ④법 제52조제2항에 따라 보건복지부장관은 다음 각호의 업무를 정부가 설립ㆍ운영비용의 일부를 출연한 비영리법인으로서 사회복지 지도ㆍ훈련 또는 시설평가에 관한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전문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 1. 법 제10조의 규정에 의한 사회복지사업종사자에 대한 지도ㆍ훈련업무 2. 법 제43조의2제1항에 따른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평가업무 ■사회복지사업법 시행규칙 제27조의2 (시설의 평가) ①보건복지부장관 및 시·도지사는 법 제43조의2에 따라 3년마다 시설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여야 한다. ②제1항에 따른 시설의 평가기준은 법 제43조제1항에 따른 서비스 최저기준을 고려하여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한다. ③보건복지부장관과 시·도지사는 제1항에 따른 평가의 결과를 해당 기관의 홈페이지 등에 게시하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