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기술?, 사람들은 왜 기부할까! < ḬḬ > |
정현경
서울특별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 사무국장
이제 막 모금을 시작하려는 단체에 ‘모금’의 필요성과 방향성을 강의하고 질문을 받는 순간이다. “사람들에게 눈물을 짜내면서 기부하게 하는 방법이나 설득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세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잠시의 막막한 감정을 걷어내며 대답한 것은 “사람들은 단순히 가슴이 뭉클해서 기부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기부를 하는 여러 이유중에 ‘자비’라는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답은 기부자는 설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금활동가가 가장 빈번하게 하는 오해가 바로 이것인데 ‘어떻게 하면 기부자를 설득할 수 있을까’이다. 사람은 설득할 수 있으나 기부자는 설득할 수 없는 존재이다. 다만 우리는 잠재기부자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다양한 사상과 감정, 그리고 경험의 뿌리를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번 연재에서는 ‘사람들은 왜 기부할까’에 대한 이야기를 인간이 가지는 몇가지의 철학적 사고에 빚대어 풀어나가려고 한다.
측은지심
선한욕망
경험론
공유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 추구
경험론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경험론을 대표하는 선두주자이다. 경험론(經驗論, empiricism)은 인간이 가지는 모든 인식과 지식의 근거는 경험이나 관찰로부터만 유래한다는 것이다. 성공하는 모금의 특징중 하나는 모금명분에 공감하고 인식하는 잠재기부자를 찾아 기부를 요청하는 것이다. 만화가 허영만씨가 킬리만자로 등반을 갔을 때 깔판없이 추위에 떨며 서울역 노숙자를 생각하고 ‘노숙자 방한용품 지원’을 시작한 경우나, ‘인혁당 사건’의 희생자 유가족들이 또다른 역사의 희생자를 돕기 위해 ‘우토로 살리기’에 기부금을 전달한 것, 가수 인순이가 다문화 대안학교를 설립하고, 혼혈 미식축구선수인 하인스 워드가 혼혈아동을 위해 기부하는 등 경험을 통해 공감해서 기부하고 기부를 확산하는 역할을 자처하는 사례는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이 볼 수 있다. 모금의 과정중 잠재기부자 그룹을 선정할 때 우리의 모금명분에 대해 경험했거나 충분하게 예측이 가능한 사람을 찾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자원개발을 잘 하는 사회복지사의 특징은 지역사회안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한 공감과 체험이 충분히 내재되어 있다. 이전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모금조직에서 조직원들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은 모금명분에 대한 경험, 실제적인 경험은 아니더라도 인식의 측면에서 경험될 수 있는 현상을 심어줘야 한다. 개그콘서트의 유행어인 ‘느낌아니까’를 사람들이 자주 따라하는 것은 정말 그‘느낌’을 알기 때문이다. 2009년도 서울시사회복지협의회 52.1%, 2007년도 한국인의 기부지수 조사결과 46.0%에서 조사된‘기부를 왜 하셨어요?’라는 질문에 기부자들은 ‘요청했기때문’이라고 답했다. 모르는 사람이 아무나 요청했기 때문에 기부를 무작정 했다라고 해석될 수 있지만 기부자들은 자기가 아는 사람, 아는 정보, 아는 이야기에 기부한다. 모금가들을 독려하기 위해 교육때는‘요청’을 강조하는 이 데이터의 근거는 사실 기부자와 모금가가 공통으로 아는‘느낌’, 다시 말해 사전에 서로 알고 있는 사람이거나, 서로가 알고 있던 정보를 끄집어 내어주거나, 이미 경험했던 이야기를 했을 때 기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삶의 태도와 방식에 있어 사회적으로‘자신’을 규정하고 타인으로부터 인식되어 진다. 기부자는 기부를 요청하는 모금가를 보고 기부한다’라는 말은 바로 ‘모금’을 요청하는 모금가의 삶의 태도와 방식이 기부자에게 ‘신뢰’와 ‘믿음’으로 전달되었기 때문에 기부를 요청하는 모금가를 보고 기부한다라는 말이 나온 것 같다. 바로“느낌아니까”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공유를 기반으로한 공동체 추구
공동체(共同體, Community)는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유기체적 조직을 이루고 목표나 삶을 공유하면서 공존하는 조직을 일컫는다. 단순한 결속보다는 질적으로 더 강하고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조직이다(네이버 문학비평용어사전에서 발췌). 그러나 현 시대의 공동체의 개념은 공유(Sharing)라는 의미를 더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공유, 쉐어링은 더 큰 것을 만들기 위해 나누는 것이다. 나누면 더 커지기 때문에 뭉쳐야 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마포의 성미산 마을은 이미 10년 전부터 함께 하니까 다 같이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준 공동체 마을이다. 마을공동체의 중심이였던 성미산이 개발위기에 처해지자 주민들은 성미산을 지키기 위해 함께하기를 시작했다. 불침번을 서가며 공사를 막아내어 성미산 개발을 저지하는데 성공한 이들은 ‘함께 하니 되는 구나’라는 공동체의식을 얻었다. 이후 어린이집, 대안학교, 카쉐어링 공동체사업을 진행했다. 또 다른 예로 한국여성민우회나 의료생협의 활동을 보면‘공유’라는 개념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것인데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기부란‘내 삶의 어느 한 부분은 이웃의 것이다’라는 인식하에 실천하는 기빙(Giving)에서‘기부’를 통해 공유가 실현되는 쉐어링(Sharing)으로 점차 그 개념이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특히 ‘나눔교육’이 진행되는 곳에서는 아이들에게 이 부분을 강조하면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알려준다.
사람들은 왜 기부할까? 에 대한 답은 인간이 가지는 이 네가지 ‘측은지심’, ‘선한욕망’, ‘경험론’, ‘공유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를 추구하는 것’ 때문이 아닐까? 다시말해 기부자를 유혹하는 기술또한 바로 이 네 가지를 명분화해서 여쭙고 요청하면 된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 것처럼 인간은 서로에게 존재가 확인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존재이다. ‘모금가’와 ‘기부자’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 주고 인정해 주는 것은 서로가 원하는 존재, 본성, 욕망의 의미와 크기를 알아가는 노력과 실천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꽃’(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는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유혹의 기술? 사람들은 왜 기부할까!]를 끝으로 2013년 1월부터 진행된 “사회복지사의 이중고! 모금타파!” 모금기획시리즈를 모두 마칩니다. 서걱거리는 문장과 부족하기 그지없는 얕은 사색과 개똥철학이 점철된 부끄러운 글들을 읽어주시고 격려해 주신 사회복지현장에서 일하시는 나의 동역자 분들에게 다시한번 머리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정현경
서울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 사무국장
사회복지 현장에서 모금활동가로 일한다.
사회복지사를 시작으로 기부와 모금이라는 단어가 정착되기 전부터
복지와 자원개발을 어우르고 확대하는 일을 했다.
저서로는 『모금을 디자인하라』, 『스크루지의 마음도 여는 한국의 모금가들』이 있으며,
이론이 아닌 현장에서 풀어내는 모금해법을 바탕으로 교육과 컨설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