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꿈꾸는 복지국가가 실현해야 할 정의
윤홍식 (인하대학교 행정학과·교수)
우리가 꿈꾸는 복지국가는 모든 사람에게, 누구나에게 똑같은 서비스와 급여를 제공하는 사회가 아니다. 게으른 사람과 부지런한 사람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장애가 있는 사람과 비장애인이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사회도 복지국가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꿈꾸는 복지국가는 우리 모두가 인간의 기본권을 향유하지만 자신의 노력에 따라, 자신의 필요에 따라 복지를 누리는 사회이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에 기반 해 우리는 한국 복지체제의 기본가치로서 ‘정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정의는 역사적으로 복지국가의 중요한 기본 가치 중 하나였다. 복지국가, 특히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사민주의와 등치시켰을 때, 사민주의의 기본 가치 중 하나인 ‘정의’는 이미 복지국가의 기본 가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프랑스 혁명이래 자유, 평등, 연대의 실현을 통해 19세기와 20세기의 운동가들이 이루고자했던 세상이 정의로운 사회였음을 알고 있다. 해방 이후 70년, 분단 이후 70년 동안 한국사회가 추구했던 민주주의와 평화, 그리고 최근의 중요한 의제로 부상한 복지국가 또한 민주주의, 평화, 복지국가의 실현을 통해 한국사회를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로 변화시키고자하는 염원이 담겨있는 것이다. 정의는 한국 복지체제가 실현하고자 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가장 잘 담고 있다.
한국 복지체제가 지향하는 기본가치로서 정의는 시민들이 꿈꾸는 세상의 모습을 담고 있다. 자신의 노력이 공정한 보상으로 돌아오는 사회, 누구나 원한다면 자신의 꿈을 위해 동등한 출발선 상에서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사회, 자신의 처지와 조건과 관계없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존중받는 사회는 상식적인 대한민국의 시민이라는 누구나 그려보고 꿈꾸는 사회일 것이다. 우리는 한국 복지체제가 꿈꾸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세 가지 정의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
첫째, 복지국가에서 성취에 기반 한 정의는 자신의 기여에 조응하는 급여와 서비스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새삼스럽게 성취에 기반 한 정의를 강조하는 것은 성취에 기반 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중간계급은 우리가 만들어 가려는 보편주의 복지체제로부터 이탈해 나갈 것이며, 중간계급이 이탈하는 순간 보편주의 복지국가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하지만 성취에 기반 한 정의는 한국사회에서 불평등을 지속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담고 있다. ‘성취에 기반 한 정의’가 불의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두 번째 정의가 필요하다. ‘기회의 평등에 기반 한 정의’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모든 시민은 누구의 자녀로 태어나든, 어느 지역에서 태어나든,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성인이 되어 스스로의 인생을 선택하고 책임질 때까지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한다. ‘기회의 평등에 기반 한 정의’는 바로 이러한 가치를 복지정책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셋째,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해서, 모두가 동등한 성취를 얻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정의는 성취와 기회의 평등과 함께 필요에 기반 한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누구나 낙오될 수 있고,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필요에 의한 정의는 바로 이를 실현하는 가치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의 가치를 보편주의 복지국가 내에서 실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정의는 개인의 정의를 사회의 정의로 전환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며, 복지국가의의 역사는 그 전환이 사회적 합의와 타협을 통해만 실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한국 복지체제가 지향하는 가치로서 세 가지 정의의 실현을 광범위한 시민들의 민주주의적 합의와 타협을 통해 이루어낼 책임이 있고, 타협과 합의를 이루어내기 위해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시민들을 정치적 주체로 만들어야할 책임 또한 있다. 처음부터 완전한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위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노력한다는 것이다.
* 이 칼럼은 '복지동향'에 실린 글을 필자의 동의를 구해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