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의 날’은 표창장 주고 받는 날이 아니다
이명묵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대표)
9월 7일은 ‘사회복지의 날’이다. 2000년에 제정되었으니 올해로 16년째이다. 9월 7일이 된 것은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공포된 날이 1999년 9월 7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회복지의 날은 국민의 복지 현황을 파악하고,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복지권 즉 사회권의 보호와 신장을 국가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정부가 국민에게 그 대안 계획을 답하는 날이다.
그런데 지난 15년 동안 정부와 각 지자체는 이 날을 어떻게 보냈는가? 대개는 사회복지종사자에 대하여 표창장을 주거나 위로잔치를 해왔다. 국민의 복지권 증진을 위한 현명하거나 참신한 복지정책이나 ‘복지 5개년계획’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고 대충 행사로 때우려 하는 관행이 자리잡아가고 있다. 모든 국민의 복지 증진을 도모해야할 사회복지의 날이 기껏 사회복지종사자를 위로하는 날로 왜곡되고 축소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반납하고 싶은 복지 꼴찌, 고통 1등 금메달들
우리 국민들의 ‘삶의 질(복지)’ 현황은 어떠한가? 수없이 회자되어 이제는 국민 상식이 되어버린 수치들. 청소년자살률 세계 1위, 노인자살률 세계 1위, 노인빈곤율 세계 1위.
노동분야는 어떤가? 근속년수 5.1년으로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으로 고용이 가장 불안한 나라 세계 1위, 남녀 인금격차 세계 1위, 산재사망률 세계 1위, 연간 노동시간 세계 2위. 가계는 어떤가? 가계가 부담하는 공교육비 비율 OECD 1위, 가계부채 증가율 OECD 1위. 이런 것들이 쌓여 - 복지충족지수 OECD 31위, 국민행복지수 OECD 33위, 아동 청소년 삶의 만족도 OECD 꼴찌.
“복지예산이 100조가 넘었네 ... ” 하는 기사를 보았음에도 국민 복지 실태가 처참하기까지 한 것은, 과거에 비해 복지 지출이 증가되었음에도 여전히 절대규모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복지지출에 인색한 것은 2014년 GDP 대비 사회복지비 지출이 10.4%로 OECD 평균 21.6%의 절반 수준이 증거하고 있다. 복지 지출의 비중은 국민의 생애주기별 삶의 과정(보육과 교육, 일자리, 주거, 의료와 건강, 노후생활)을 개인복지로 보느냐 사회복지로 보느냐에 따른다. 우리나라는 개인의 책임을 원칙으로 하되 사회 책임을 보완재로 인식하고 있다. 결국 국민 개개인의 삶을 자유주의 관점에서 소극적 보충적 최소한으로 지원할 것인가, 사회연대의 관점에서 적극적 보장적 최적으로 지원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 국민 사회철학의 소산이다.
사회복지의 날은 복지 철학 논쟁의 날이어야
복지재정의 규모를 논쟁하기 전에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 것인가? 복지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먼저 해야 한다. 그 합의 수준에 따라 그 수준만큼의 재정을 마련하면 된다. 재정 마련 과정에서 상위계층 10%가 전체 소득의 44.8%를 차지하여 미국 다음으로 불평등한 국가임도 문제될 것이다.
사회복지의 날에 복지5개년계획을 발표한다면, 그 전 단계에서 정부는 국민과 함께 핵심 쟁점들을 토론하게 될 것이다. 사회복지 문제의 원인과 책임의 범위와 수준, 그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정리될 사회 규범과 연대의 범위와 수준. 예산에 맞추어 복지를 짤 것인가 복지에 맞추어 예산을 짤 것인가? 증세는 필요한가 불필요한가? 필요하면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 부자증세로 할 것인가 보편증세로 할 것인가? 일반조세로 할 것인가 목적세로 할 것인가?
사회복지의 날은 이런 쟁점들이 논의되는 날이길 바란다.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지금의 소강사회에서 살 것인지 대동사회 복지국가에서 살 것인지에 관한 국민들의 치열한 사회적 논쟁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곧 우리의 21세기 복지 비전이고 자산이 될 것이다.
‘사회복지의 날’은 표창장 주고받는 날이 아니다.
현장의 복지운동 사회복지사들은 복지시민단체와 함께 2012년부터 사회복지의 날이 되면 사회복지의 날을 그 제정 취지에 맞게 제대로 시행하라고 촉구해 왔다. 올해에도 지난 월요일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길거리 기자회견을 하였다. “사회복지의 날은 표창장 주고받는 날이 아니다. 노인빈곤, 청소년자살, 주거비 폭탄, 소득양극화, 비정규직 차별, 사회복지 실천현장의 열악한 근로환경 등 ... 정부와 지자체는 복지국가 십년대계를 마련하라!”
(위 글은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