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열 것인가?
사회복지계 판도라의 상자, 억압받는 노동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강상준 지부장
베버리지 보고서에 담긴 복지국가의 청사진은 간단하다. 누구나 자신의 노동력 제공을 통해 현재의 삶을 영위하고 노후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임금(소득)이 보장되는 국가 시스템을 사회정책으로 제도화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동자의 노동이 착취당하지 않도록 국가와 시장은 노동자의 조직화를 적극 지원하고 정책의 동등한 파트너로 같은 테이블 위에서 격렬하고 치열하게 서로가 대항하면서도 종국에는 타협을 이루어 나가는 사회적 합의의 정치를 정착시키게 된다.
이와 같은 모습은 개인과 가족의 복지를 사회정책의 가장 최우선 목표로 내세우는 모든 복지국가에서 한결같이 걷게 되는 경로(path dependency)이다. 정도와 모습의 차이가 있을 뿐 반세기를 훌쩍 넘긴 현재도 복지국가로서 흔들림 없는 위치를 점하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노동자의 사회적 연대체인 노동조합이 유지되도록 노동시장에 뛰어들게 될 모든 시민들을 교육하고 그들의 조직화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복지국가는 ‘거대한 사회보험 시스템’이다.
생애주기에서 위험으로 다가오는 소득의 불안정성을 노동을 통한 임금이라는 수단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 시민들을 소득보장과 소득분배로 보호하기 위한 국가차원의 사회보험 시스템이다. 결국 핵심은 이 시스템의 대상인 대다수 시민들에 대해 그들이 지닌 유일한 소득 수단인 노동권을 ‘이중적인 체계로 피해 받지 않도록 보장’을 하고 ‘이중적이지 않은 노동 시장’을 지켜내기 위해 ‘노동의 연대’와 ‘노동의 조직화’를 법률로 제정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과연 어떠한가? 갈수록 격화되는 ‘심화된 이중 노동시장’과 교묘하게 뒤틀어 막는 ‘노동의 조직화’, 단체 이기주의로 몰아가는 ‘노동의 연대’ 등 노동하는 시민들이 복지국가의 중심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내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현실은 사회복지현장의 노동조합조직율의 수준이다. 한국사회 평균 노동조합조직율의 10% 근처에도 미치지 못하는 1.5%... 과연 이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사회복지직능단체들을 비롯해 협회와 협회를 장악한 기득권 세력들은 ‘복지국가’를 이야기하고 정부보조금을 더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지만, 막상 그들의 책임 하에 있는 사회복지현장의 시설, 기관에서 노조가 언급되는 순간 ‘노조와해’, ‘위탁포기’ 심하게는 ‘시설폐쇄’ 까지 서슴없이 말하고 있다. 날로 달로 향상되는 중간관리직 이상의 임금수준과 처우 이면에는 그 누구도 열지 못하는 ‘판도라의 상자’가 사회복지 노동현장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굴절된 노동의 바탕위에 후원과 종교행위가 강요되고, 인정받지 못하는 그림자 노동과 차별받는 비정규직 등 사회복지 노동현장의 착취 받는 현실이 이러한데 한국의 사회복지를 복지국가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노동없는 노예 사회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듯이, 노동권 보장없는 사회복지는 자선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이제는 사회복지 현장의 노동이 단결해야 대한민국의 복지가 바로 설 수 있음을 모두가 자각하고 일어설 때이다. 한국의 사회복지 노동자여 단결하자! 우리가 버릴 것은 차별받는 오늘이요, 얻는 것은 연대하는 내일이다.
* 해당 게시물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의 양해를 구해 게재하였음을 밝힘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