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은 지금 감염보다 더 무서운 공포와 싸우고 있다.
SRC보듬터 이봉선 사무국장
사실상 ‘격리’와 다름없는 생활을 한지 어느덧 두 달이 지나가고 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상황에 적응해 가고 있지만, 코로나19가 위기에서 심각단계로 격상 되었을 때 모두가 느낀 두려움과 공포는 전쟁과 같았다.
지침이나 매뉴얼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안전문자가 울리고 평온했던 일상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로 변해버린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마치 1980-90년대의 장애인생활시설로 돌아간 것 같다. 코로나19는 이처럼 우리의 일상을 바꿔버렸다.
“선생님 저 올라가고 싶어요. 시설로 가고 싶은데...”
지난 2월 18일, 대구에서 대학을 다녔던 김준우(가명)이용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준우는 졸업식 참여를 위해 대구에 갔다가 졸업식이 취소되면서 거기서 머물던 중이었다.
“선생님 저 올라가고 싶어요! 시설로 가고 싶은데, 그리고 저 열이 조금 있고 감기가 조금 심해진 듯해요”
평소 같으면 “ 어서 오라”고 했을 텐데, 그 때는 준우 보다 시설에 있는 다른 이용자들이 걱정됐다.
“그냥 거기 있음 안 돼? 거기 가까운 병원에 가는 것은...”
“아니요! 그냥 시설로 올라갈 거예요!”
준우의 단호한 말투에서 그의 공포감이 얼마나 큰지 느껴졌다. 여러 번의 설득에도 그는 좀처럼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우리는 특별관리 지역에서 왔다는 것 하나만으로 준우를 확진자 대하듯 하고 있었다.
결국 시설대신 예전 행사 때 이용했던 유스호스텔을 준우의 임시 거처로 정했지만, 준우의 감기는 더욱 심해졌고, 유스호스텔 관계자가 코로나 대응지침에 따라 준우를 의심환자로 보고 관할 보건소에 신고했다.
보건소 선별검사를 지원하는 일은 보건당국이 아닌 오로지 시설의 몫이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준우는 검사를 받았고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결과를 기다리던 32시간 동안 준우 뿐 아니라 그를 돌봤던 직원도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공포에 떨어야 했다. 직원은 가족들을 생각해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모텔을 전전했다.
코로나19가 심각해지면서 보건당국은 집단 사회복지시설에 ‘예방적 코호트 격리’라는 대응조치를 내렸다.
코호트 격리는 집단감염이 지역사회에 퍼져나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병원이나 시설 등을 통째로 통제하는 조치이다. 의료기관은 확진자가 발생해야 코호트 격리에 들어가는데 사회복지시설에는 ‘예방적’이라는 명목으로 사전 격리 초지가 내려졌다. 지역사회 접근성이 낮고 무연고자가 다수인 시설 이용자의 특성을 고려할 때 코호트 격리가 필요하다는 게 보건당국의 시각이다.
물론 통제를 하면 그렇지 않은 상황보다는 감염 요인이 줄어들 것이다. 현장으로서야 달리 뾰족한 대안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을 통해 우리는 국가와 사회적 약자와 관계를 맺는 방식을 여실히 볼 수 있었다.
사회 다수가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라면 소수를 가둬 놓은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여기는 방식 말이다. 집단감염이 확산되면서 격리조치가 더 강화되는 요즘이 사실 나는 무섭다.
자신의 목숨 앞에서 객관적일 수 없고 죽음의 공포를 이길 수 있는 사람도 없지만, 그래서 더 씁쓸하다.
사회의 안녕을 위해 장애인 시설을 ‘격리’해야 한다는 논리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우리는 누구의 안녕을 위해 스스로를 격리하고 있는가.
우리가 격리생활을 한지 50일 만에 「코로나19 유행대비 사회복지시설 대응지침 4판」이라는 공문이 다시 내려왔다. 거기 적혀 있는 문자들이 공허하다. 안전지대에 서 있는 사람의 시선과 언어로 꾸며진 지침이 전투 중인 현장에서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상황을 좀 더 면밀히 분석하고 전체적인 전망을 갖춘 지원 계획과 대책이 국가적으로 수립되고, 그에 맞게 시설별 시설 상황을 고려한 구체적인 매뉴얼이 만들어져야 할 때라고 본다. 전염성이 5년 단위로 찾아온다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가 사회와 ‘격리’된 채 정지된 일상을 보내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도 시설 이용자들과 함께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우리 직원들에게 응원에 박수를 보낸다.
평범한 일상이 그립다.
SRC보듬터 직원들과 함께_오른쪽에서 두번째, 이봉선 사무국장
(코로나19로 평범한 일상이 그리운 요즘이라는 글과 함께 약속이나 한듯 부서원들이 옷을 맞춰 입은것같아 신기해하며 찍은 사진입니다._글쓴이 페북에서...)
※ 이 글은 서울시복지재단 복지이슈 Today vol.85(2020. 04) 이슈을 글을 발췌하였으며, 서울시복지재단과 이봉선사무국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게재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