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사회복지시설 단체연수 후기
빛나는 별 들판의 산티아고로 향한 사회복지사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 정승아
여행을 다녀온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1달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14박 16일(2019년 5월 29일~6월 13일)동안 산티아고를 다녀온 9명의 사회복지사, ‘올라! 부엔까미노팀’. 아직은 마음에 남아 있는 설레임을 꺼내 기억을 나누어 본다.
# 왜 산티아고였을까?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돌아와서도 가끔 생각한 것은 왜 산티아고를 가고 싶었을까 하는 질문이다. 일단, 그냥 그 길을 걷고 싶었다. 길을 걷는 동안은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수 있고, 내 삶에 큰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 그리고 그렇게 많이 걸으니 살도 좀 빠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 (나에겐 전혀 해당되지 않았던 이야기였지만..ㅜㅜ). 본능적으로 변화를 필요로 했던 시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 사회복지 종사자 단체연수로 산티아고를?
‘서울시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단체연수’는 2017년부터 서울시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처우개선 사업으로 서울특별시사회복지사협회를 통해 실시되고 있다. 각 직능별, 지역별 다양한 사회복지종사자들이 팀을 구성하여 연수 일과 장소를 정하면 1인 45만원의 연수비를 총 660명에게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러한 연수로 ‘스페인 산티아고’를 간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지원금이 있지만 꽤 높은(?) 자부담과 특히 15일 정도의 긴 일정은 근무하는 기관과 업무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 부분이 많이 망설여졌으나, 이 기회를 쉽게 놓치고 싶지 않아 큰 용기를 내었다. 나의 용기에 흔쾌히 기회를 주신 협회와 동료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 떠났다. 그리고 시작된 길.
많은 설레임과 기대를 안고 우리는 드디어 5월 29일 새벽 마드리드행 비행기에 몸을 싣었고, 다사다난 하였지만 첫 출발지점인 폰페라다까지 무사히(?) 도착하였다. 하지만 처음 걸었던 날 우리는 모두가 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내가 대체 왜!! 여기 왜 왔을까!!!!” 강하게 쏘아 내리던 뜨거운 햇빛, 걸어도 걸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 어깨에 무겁게 얹혀진 가방.. 다시 생각해도 고개가 절레절레 져어졌던 날이다.
그랬던 우리가 지금은 다시 또 가고 싶은 길로 기억되는 길.. 그 길이 시작되었다.
# 위로가 되었던 나의 길
눈 부시게 새 파란 하늘, 손에 닿을 듯한 구름, 하늘로 이어질 것 같은 길, 양 옆으로 펼쳐진 초록 들판.. 표현할 수 없는 길의 아름다움을 꼭 한번 눈으로, 마음으로 느껴보길 바란다. 가끔 그 곳의 바람소리와 초록 들판을 떠올리면 숨 가쁜 하루 속에서도 큰 위로가 되는 듯 하다. 때로는 길을 걷는 중 계속된 비와 바람으로 지치기도, 두렵기도 했었지만, 함께 한 동료들과 길에서의 사람들 덕에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던 길이었다.
# 길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
길을 걸으며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천천히 조심스레 길을 걷던 은발의 노부부, 만날 때 마다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를 외치던 프랑스 청년, 홀로지만 씩씩한 홍콩 왕언니, 발렌시아에서 온 볼뽀뽀 청년, 심하게 부은 내 다리를 직접 찬물로 식혀주신 외국인 어머님, 4총사 이탈리아 할아버지들, 작은 몸으로 800km응 완주한 한국 여성 (알고보니 우리 팀 팀장님의 동창이었다는..), 막 군대를 전역한 20대 한국 청년.. 이 길을 시작한 이유는 모두 다르겠지만 길이 끝난 후 서로의 기억속에는 아마도 오래 오래 남아 있지 않을까?
# 함께, 따로, 또 같이
무엇보다 함께 동거 동락한 우리 팀원들이 아니었다면, 이 길을 시작하는 것도 끝내는 것도 이후의 시간들도 없었을 것 같다. 이 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공감 하겠지만, 7~8kg이 되는 배낭을 매고 매일 25km내외를 걷다 보면 내 한 몸 돌보기도 어렵고 지치는 순간들이 오게 된다. 우리에게도 4일 정도 되었을 때 그러한 고비가 왔었다. 서로 걷는 속도도, 보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다른 각자가 함께 하기 위해 서로를 너무 배려하다 보니 어느 순간 배려가 부담과 지침으로 서로를 힘들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역시 사회복지사였던가? 함께 모여 대화한 끝에 “함께 하되 따로, 그리도 또 같이” 라는 원칙으로 각자의 스타일과 개인시간을 존중하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함께이지만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행이 되면서 우리의 길은 더욱 더 자유롭고 풍성한 시간이 되었다.
# 동료들이 있었기에..
혼자였다면, 동료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찔했던 기억들이 너무나 많다.
첫날 기차를 놓쳐 일정이 밀리고, 버스 예약이 제대로 안되어 헤매고, 몸이 아픈 팀원이 생겨 병원에 가 되지도 않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써가며 진료를 받고, 체크인을 제대로 못해 항공료 2배의 위약금을 내고, 공항노숙을 하고, 일명 멘붕 상황들이 어마어마하게 있었다.
작은 실수가 모두에게 피해가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어 더욱 부담 되고 미안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함께였기에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지지가 되고 위로가 되었다.
너무 많은 시행착오 덕에 마지막엔 어떤 상황에서도 “No ploblem"을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강한 멘탈의 소지자가 되었다고나 할까? 이 모든 것이 동료들과 함께한 힘이라 생각한다.
# 돌아오다. 그리고...
돌아오고 나서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자유여행가가 되었다거나, 천사 같은 성품으로 변했다거나, 살이 쭉 빠졌다거나 하는.. 드라마틱한 변화는.. 나에게는 없다.
떠나기 전처럼 열심히 일하고,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고, 여행을 동경하고 그렇게 또 평범하게 일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서도 내 안에 아주 작은 무언가는 변했고, 달라졌다는 것은 느낄 수 있다.
막연한 두려움으로 배낭 안에 꾹꾹 쑤셔 넣었던 많은 짐들을 하나 하나 비워가면서 낯선 것에 대한, 미래에 대한, 삶에 대한 두려움도 하나하나 덜어졌다. 자연히 얻게 되고 버려지는 것들, 낯선 불편함이 어느새 익숙함이 되는 변화가 꽤나 편안해 졌다.
그리고 ‘나만의 속도’를 즐기게 되었다. 처음 걸을 땐 일행을 놓칠까, 길을 잃을까 불안하고 앞서야만 할 것 같아 무리하게 걷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만의 속도로 홀로 길을 걸으면서,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더 많은 아름다운 풍경을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다. 홀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 시간은 한국에서 느낄 수 없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었다.
앞서지 않아도 더디어도 나의 속도의 맞는 삶이 참으로 행복하다.
마지막으로 길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 동료들과의 시간을 통해서 다시 금 '타인에 대한 존중'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좋음, 옮음'이라 생각하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나는 과연 타인의 가치와 생각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있는가? 사실 부족한 면을 많이 느끼고 돌아온 시간이었기에 이에 대한 답은 앞으로 계속 찾아 나가야 할 것 같다.
곧 다시 나는 그 길을 만나러 갈 것이다. 그땐 또 무얼 버리고.. 무얼 얻을 수 있을까?
길에서 만날 동료들을 기대하며... 그리고 만나면 함께 인사해요.
Hola! Buen Camino!!
ps. 나의 소중한 동료들 너무 감사합니다^^
체력짱 에너지짱 분위기짱 변정은 시크한 척 사랑넘치는 정희선
강철체력 최고의 왕언니 신수정 밥 없이는 못살지만 글로벌맨 김태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분위기 메이커 정준혁 좀비설 No!! 세상 다정한 오문원
외국인보다 브라이트한 막내지만 멋진 팀장님 김승훈
나는 내 길을 갈뿐! 까미노의 넘사벽 1등! 김소현
* 본 글을 한국사회복지사협회 소셜워커 8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첫 댓글을 제가 달다니요! 시크한 척 사랑 넘치는 또 하나의 사람, 승아팀장님, 여행을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도록 글과 사진으로 잘 정리해주어 고맙습니다. 참... 아이러니하게 문득문득 생각나.. 거기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