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의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사회복지사 오영식
오영식 사회복지사
(시민위/주민조직화실천 사회복지사모임 “더불어한길” 공동대표)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주민의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사회복지사”를 미션으로 살아가는 오영식입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받을 때마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는 것 같아 좋네요. 부천시 고강종합사회복지관, 시소와그네 강북영유아통합지원센터, 도봉서원종합사회복지관 등 사회복지기관에서 10여년 정도 일해 오다가 올해 2월에 퇴사하고 잠시 쉬면서 프리랜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갈매사회복지관 박인숙 관장님과 함께 주민조직화실천 사회복지사모임 “더불어한길”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사실 문학 번역가가 꿈이었던 영문학도였습니다. 대학 시절 학생회 활동과 여성주의 소모임에 참여하면서 사회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개선하는데 직접 기여해보고 싶은 마음에 보다 주민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사회복지학을 복수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생각했던 사회복지란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변화를 위한 진짜 힘을 만들어내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다 보니 제가 영문학과 사회복지학에 관심을 가졌던 공통점이 있더군요. 언어와 문화가 달라 서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던 사람들이 번역을 통해 마음이 이어지듯 서로 남남처럼 보였던 주민들이 사회복지사를 매개로 관계가 소통되면 거기서 힘이 생기고 가능성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저는 사회복지가 갖는 그 “소통”의 힘에 매력을 느낀 것 같네요.
◈ 사회복지사로 활동하시면서 겪었던 어려운 점 또는 기억에 남는 경험을 말씀해주세요.
사회복지사로 활동하면서 가장 아팠던 순간은 제가 3년 간 활동했던 시소와그네 강북영유아통합지원센터가 2011년 5월로 운영이 중단되었을 때입니다. 시소와그네 영유아통합지원센터는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영유아복지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지자체가 협약을 통해 한 때 전국 11개소까지 운영되었으나 정부와 지자체의 복지의지 부족으로 현재 마포센터와 청주센터를 제외하고는 모두 운영이 중단되었습니다. 센터의 지역 안착을 위해 영유아복지 전달체계가 필요하다고 주민들과 함께 지자체와 국회를 방문하며 의원들도 만나고 필요하면 기자회견과 시위도 했습니다. 주민들과 함께 싸워낸 덕분에 센터 운영이 2년 더 연장되기는 했지만 2011년 5월, 센터 운영 5년 만에 운영이 중단되었습니다.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경험과 다니던 직장이 운영 중단되는 경험은 질적으로 다른 상처로 남더군요. 물론 그 투쟁의 과정 속에서 성장한 주민들께서 이제 지역 곳곳에서 주민리더로 활동하고 계신다는 점에서 뿌듯하기도 합니다.
주민들과 함께 만나며 기억에 남는 경험도 많습니다. 고강복지관에서 일할 때 그림책 읽는 엄마모임 “작은소리” 신입회원들과 옛이야기 공부하던 때도 생각나고 도봉서원복지관에서 일할 때 공동육아 사회적협동조합 “동네마실” 대표님과 닭발 뜯으며 동네에서 해보고 싶은 일에 대해 수다 떨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제게 가장 많은 고민을 던져주었던 경험은 시소와그네에서 일할 때 만난 어떤 아이 어머니와의 경험입니다.
“역시 결혼도 안하신 남자 선생님이라 제가 얼마나 절박한지 공감을 못 하시나 봐요?” 언어장애가 의심되는 아이의 치료 문제로 아이의 어머니와 상담을 하던 중 아이의 어머니가 답답한 마음에 불쑥 던지신 말입니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점이라 가정에 대한 이해나 제 상담태도에 미숙한 부분도 없지 않았겠지만 “남자라서 공감을 못한다”라는 지점에서 저는 쉽게 말을 이을 수 없었습니다. 여성의 현실적인 삶에 남성인 나는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이 되더군요. 주민들의 가능성과 강점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 분들의 좌절과 상처, 희노애락을 이해하며 오롯이 그 분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제 경우에는 그 주민이 영유아가정, 그 중에서도 주로 아이의 어머니인 여성이었죠. 종사자는 물론 만나는 주민들 대부분의 성별이 여성인 사회복지계에서 남성 사회복지사로 일한다는 것은 강력한 개성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때로는 그 개성이 강점이 되기도 했지만 진솔한 고민으로 들어가기에는 소통에 장애가 될 때가 많았습니다. 앞으로 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는 근본적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여성들이 느끼는 좌절과 상처의 경험을 평생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고민이 되더군요. 하지만 이런 고민들을 술자리에서 다른 계통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동료들과 나누다보니 사회복지라는 영역 자체가, 많은 경우 자신의 경험을 넘어 연대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비장애인 사회복지사로서 장애인과 함께 하는 일, 청년 사회복지사로서 노인과 함께 하는 일처럼 말입니다. 저는 남성 사회복지사로서 육아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새벽에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를 업고 택시를 잡으러 큰 길까지 뛰어 내려가는 경험도, 난치성 질병을 앓고 있는 아이를 혼자 키우며 내가 저 아이보다는 오래 살아야 한다며 눈물짓는 경험도 없지만 제게는 영유아가정 양육자를 자신의 삶의 주체로 세우려는 신념과 직업이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자신에게 집중된 양육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로 자기학대적인 좌절을 겪고 있는 현장에서 그들과 함께 하겠다는 진심, 그 진심이면 경험을 넘어선 연대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그 분과는 시소와그네 안착과정에서 사례관리자와 사례가정의 관계를 넘어 영유아복지를 지켜내는 동료의 관계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경험을 넘어선 연대”, 그 분과의 경험을 통한 제 고민의 결론입니다.
◈ 최근 관심을 가지고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요?
올해 2월에 복지관을 퇴사하고 나서는 프리랜서로 여러 가지 새로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인덕대학교에서 지역사회복지론 강의 기회를 맡아 1학기 강의를 하기도 했고 서울시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용산구 한남동 마을계획단 촉진자로 활동도 하고 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 활성화 사업 개발에도 참여했습니다. 소속이 없다보니 불안한 점도 있지만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은 완전 새로운 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즐거워요.
◈ 서사협 팟캐스트 방송을 오랫동안 진행하고 계신데,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싶으신가요?
네, 2014년부터 5년째 하경환 선생님과 함께 서사협 시민위원회 위원으로서 서사협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란 쉽게 말하자면 인터넷 라디오 방송입니다. 팟빵 어플을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그동안 지역아동센터, 반성매매, 정신건강복지센터 등 다양한 사회복지현장의 이슈를 다뤄보려고 노력해왔는데요. 5년째 하다 보니 주제 구성의 다양성에 더 고민되긴 합니다. 올해부터는 새로운 MC 두 분을 신규로 영입해서 팟캐스트 주제 구성을 더욱 다양하게 가져가보려고 합니다. 일상업무를 하면서 팟캐스트 녹음을 하다보니 등록 주기가 불규칙해지고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리구요. 사회복지현장의 다양한 모습들을 소개드릴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 사회복지사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깊이 고민하게 되는 묵직한 질문이네요. 제 사회복지사로서의 삶의 미션이 “주민의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사회복지사”입니다. 저는 사회적 약자인 주민들의 삶에 관심이 있습니다. 주민들이 가진 가능성과 강점을 찾아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연결해 주민 당사자가 스스로 자신의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도록 돕는데 관심이 있습니다. 다시말해 사회복지사로서 주민의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게는 사회복지현장에서 이러한 일을 함께 할 동료가 있습니다. 제가 올해부터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주민조직화실천 사회복지사모임 “더불어한길”이 바로 그들입니다. 약 30여명의 현장 사회복지사들이 모여 사회복지현장에서의 더 나은 주민조직화 실천에 대해 고민하는 모임입니다. 올해는 서울시 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 활성화 사업에도 강사단으로서 함께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함께 활동하고 싶은 분들은 연락주세요.
◈ 향후 목표나 계획이 있으시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복지관 퇴사하고 1~2개월 쉬면서 새로운 경험이나 쌓자고 시작한 프리랜서 활동이 벌써 4개월이나 되었네요. 현장에서 일을 시작한지 10년이 되는 시점에서 쉬고 있는지라 향후 어떤 현장에서 일할지 깊게 고민 중입니다.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는 고민에 집중하기 어려워 사랑하는 아내와 8월 말부터 “제주도 한 달 살이”를 하면서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아내도 다니던 직장에 휴직신청을 해둔 상태입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어떤 길을 가게 되든 아내와 함께 고민하며 결정해보려구요.
◈ 후배 사회복지사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니 더욱 실감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사회복지를 시작할 때 누구나 현장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학생들에게도 저마다의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현장의 현실에 매몰되다보니 우리 모두는 각자의 꿈을 잊고 지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장의 현실에 매몰되어 있는 꿈을 이끌어 올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같은 꿈을 꾸는 동료를 조직하는 것입니다. 네, 결국 조직화네요. 주민의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꿈을 이끌어내기 위한 동료를 각자의 현장에서 조직하셨으면 합니다. 오노 요코가 말했듯 “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됩니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