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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없는 건강권 보장을 위한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김경희 간사(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일까.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빈곤, 질병, 장애, 노후, 실업, 돌봄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각종 사회보장과 복지제도를 통해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IMF 위기 직후인 1999년 한국사회 최초이자 최후의 사회안전망인 기초생활보장제도는 65세 이상의 노인, 18세 미만의 아동, 근로능력유무 등의 인구학적 기준과 대상을 폐지하고 모든 시민이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제정되었다.

 

최근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다양한 사회계층이 다시 유래 없는 경제적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6월 국무회의에서 “예기치 않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 속에서 불평등이 다시 악화되고 있다”며 “위기가 불평등을 키운다는 공식을 반드시 깨겠다”고 밝혔다. 오히려 위기를 불평등을 줄이는 기회로 삼겠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코로나19 확산으로 변화된 삶을 걱정하기 아주 이전부터 지금까지, 매일같이 당장의 생존을 걱정해야 했던 빈곤층의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 무엇이 문제인가

현행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의 수급자가 되려면 그 사람이 속한 가구의 소득이나 재산 기준 외에도, 1촌의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인 부양의무자로부터 부양을 받을 수 없다는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때 부양의무자가구의 소득기준은 ‘부양능력 있음', ‘부양능력 미약', ‘부양능력 없음'으로 나뉘는데, 부양능력이 없음을 인정받는 것은 기준중위소득의 100% 이하일 때 가능하다. 그런데 올해 기준중위소득은 4인 가구 기준으로 4,749,174원, 1인 가구 기준 월 1,757,194원이다. 만약 부양의무자가구 1인이 올해 최저임금인 8,350원을 받고 주 40시간을 일한다고 해도, 월임금 1,795,310원으로 부양능력이 있다고 판정되는 것이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제정 때부터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등의 수급이 필요한 사람에게 부양의무자의 부양기피사유서 등 입증을 요구하는 것은 권리행사를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보건복지부는 본인의 소득인정액은 수급자격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양의무자 기준 등으로 인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의 규모가 2018년 가구 기준으로는 48만 가구, 개인 기준으로는 73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계하고 있다.

 

물론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 범위와 소득·재산 기준이 완화되었고, 2015년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맞춤형 급여로 개편되며 교육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처음으로 완전 폐지되었다. 이어 2018년 10월 주거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었다. 이러한 개선조치 덕분에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된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교육급여,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한 이후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중증장애인이나 기초연금을 수급하는 소득 하위 70% 노인 등 인구학적 기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완화하겠다는 것에 그쳤다. 이에 시민사회단체는 모든 빈곤층의 기초생활과 기초의료를 보장하기 위해,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서 생계급여 및 의료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히 폐지할 것을 요구해왔다.

 

무한히 반복된 약속과 선언 끝에 있는 것은...

그러던 2020년 8월 10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내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의 기초생활보장제도 운영 방향과 내용을 담은 ‘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을 의결했고, 2023년까지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고소득, 고자산가 제외)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시행 20년만에, 송파 세 모녀 사망 사고가 발생한지 7년만에 얻어낸 결과이고, 그 누구보다 단단한 당사자들과 반빈곤시민사회단체들이 권리를 요구한 결과인 것이다. 바라 마지않던 일이지만 의료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폐지되지 않았고 개선 내용도 1차 종합계획에서 밝힌 수준에 그쳐, 시민사회단체들은 미흡한 조치라고 평가한다.

 

어찌 되었든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약속을 지킨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2017년 예비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시민사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같은 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행동’에서 기초생활보장제도 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요구하며 19대 대통령선거 각 후보별 입장을 문의했을 때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생존권 보장책임을 개별 가족에게 전가하는 부양의무자 기준은 궁극적으로 폐지되어야 한다.”고 재차 입장을 밝혔다. 심지어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 폐지할 것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또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광화문농성장>에 방문하여 2020년 발표될 2차 종합계획에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약속과 선언은 무한히 반복되었지만 “공약 파기"라는 지적에 박 장관은 오히려 “의료급여에 있어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는 언급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없이도 유사한 혜택이 있어 괜찮다?

이번 2차 종합계획 발표 이후 보건복지부는 언론인터뷰를 통해 “의료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이 남아있지만, ‘중증질환 및 희귀·중증난치질환자 산정특례’, ‘건강보험 차상위계층 본인부담 경감 지원’이나 ‘재난적 의료비지원’ 등 유사한 혜택이 있다”는 해명을 했다. 하지만 ‘중증질환 및 희귀·중증난치질환자 산정특례’의 대상은 중증 및 희귀난치성 질환자로 제한하고 있고, ‘차상위계층 본인부담 경감 지원’ 또한 희귀난치・중증질환자, 만성질환자, 18세 미만 아동만 대상이 될 수 있다. 심지어 차상위계층본인부담 경감 지원은 소득인정액이 기준중위소득 50%에 미달하여 선정기준에 부합하더라도 기초생활보장제도와 마찬가지로 부양의무자 기준이 있어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감당할 소득이나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만 부양의무자로 남게 되는데, 이들 문제는 건강보험으로 풀 수 있다”는 해명도 적절하지 않다.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만 6개월 이상 월 5만원 이하의 건강보험료도 납부하기 어려워 체납하게 되는 생계형 체납자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결손처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때뿐이고 보험료를 재체납, 장기체납하는 생계형 체납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또한 급여제한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보험료를 체납한 사람들이 당장 병원을 이용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하지만 연체금액과 의료비에 대한 독촉과 고지, 납부독려를 끊임없이 받다보니 아파도 참으며 병원이용을 아예 하지 않는 사람이 21%에 달한다고 한다. 결국 빈곤한 사람들은 의료급여에서도 건강보험에서도 적절한 의료보장을 받기 어려운 현실이다.

 

기초의료보장을 위한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의료급여제도는 저소득 취약계층의 의료보장을 위해 마련되었다. 그러나 의료급여 수급자 비율은 수년간 인구의 3%정도로 관리되고 있다. 기초의료보장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재정운영의 측면에서 의료급여수급자의 규모를 관리해왔던 것이다. 빈곤층 의료보장정책은 의료급여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을 포괄하여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제시하지도 않은 채, 시민들과의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약속을 수차례 저버렸다.

 

“아이는 커가고 드는 돈은 더 많아 지는데 어느날 구청에서 연락을 받았고 무슨일인가 하니 (아이의 부양의무자인) 남편의 소득이 높아져 아이의 차상위본인부담경감이 해지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정을 설명하였고 구청에 가서 서류를 써서 다행히 아이의 차상위본인부담경감이 해지되진 않았지만 부양의무자 기준때문에 너무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친정 아버지와는 단지 통화를 한다는 이유로 부양의무자가 되어 수급자가 될 수 없었고 아이는 얼굴은커녕 목소리조차 들어본 적 없는 아빠의 소득때문에 의료지원을 받지 못할 뻔 했습니다.” 

 

기초법공동행동에서 진행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위한 수기공모전> 대상을 받은 당사자의 이야기이다. 국가가 마땅히 시민들의 기초생활과 기초의료를 보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에게 온전히 책임을 전가하는 불합리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유지했기 때문에 밤이 괴로움의 시간이었다고 한다. 더 이상 몸이 아파 좌절하고 죽음에 떠밀리는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의료급여가 빈곤층 의료보장제도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하여 빈곤층의 건강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다.

 

사진1.JPG

 

*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복지동향 2020년 9월호" [동향1] 차별 없는 건강권 보장을 위한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김경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의 글을 동의를 얻어 게재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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