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식혜를 건네듯
박수미 사회복지사(서울시립북부장애인종합복지관)
무더운 여름, 인근 복지관 사회복지사로부터 밑반찬 서비스 지원이 필요하다는 상담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어머니의 아담한 키, 마른 체구, 조금은 헬쓱한 모습, 마주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삶의 고단함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만들었다며 수줍게 건넨 식혜 한 잔에는 세월을 견뎌온 단단한 맛이 났습니다.
홀로 자녀를 키우시는 김○○(가명, 여, 55세, 지체장애)님은 상담이 있을 때마다 늘 식혜를 챙겨주셨습니다. 어머니께서 만든 식혜는 달디 달았지만, 살아온 날들은 결코 녹록치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인해 좌측 다리에 상해를 입었고 당시 병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수술을 받기 전까지 까치발로 걸어 다녀야 했습니다. 게다가 20대 초반에는 임파선 암 진단을 받았고, 항암 치료를 통해 다행히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40대가 되었을 때 갑상선에도 암이 발견되어 암을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또 건강치 못한 상태에서 아이를 출산한 탓에 확장성 심부전증이라는 진단까지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부정맥과 호흡곤란으로 일상생활조차 힘든 상황입니다.
“선생님, 저는 정말 누구의 도움 없이 우리 아이와 둘이 잘 살아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집 창문을 열고 5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꼭 저에게 뛰어내리라고 손짓하는 것 같아요. 내가 잘 살아야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건 아는데 저에겐 용기도 희망도 없어요.”
건강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최근 타구에서 노원구로 이사하면서 환경도 낯설어지자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극에 달한 상태였습니다. 비좁은 환경에서 정부 지원금을 지원받아 생활하는 것은 어머니의 우울감을 더욱 더 가중시켰습니다.
지난 이야기를 들으니 어머니에게는 밑반찬 서비스 지원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도움이 필요해보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내가 어머니의 삶을 조금 더 윤택하게, 최소한의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해드릴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이에 복지관 서비스 계획 회의를 통해 밑반찬 서비스 지원과 노원구 정신건강 복지센터에 정신건강 상담과 평가를 의뢰하여 건강한 마음으로 일상을 영위하는 것을 목표로 두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비가 많이 오던 날, 어머니께서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빗길에 넘어져 왼쪽 무릎 뼈가 골절되어 인근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으나 본인이 앓고 있는 신장, 내분비질환과 암 병력으로 인해 간단한 정형외과 수술도 함부로 받을 수 없어, 기존에 진료 받은 의료 기관으로 급하게 이송되어 수술을 받아야하는 복잡한 상황에 처해 집에 있는 아이를 신경 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의 상황을 하나씩 ‘함께’ 해결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먼저 수술, 치료비를 위해 주민 센터 긴급 의료비 지원신청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드리고 진행 과정을 세심히 살폈습니다. 덧붙여 정형외과 수술로 인해 거동을 할 수 없어 간병인이 반드시 필요한 상태였기에 간병비 지원을 외부자원 발굴을 통해 연계하고자 이 곳 저 곳을 수소문 했습니다. 그때 위기가정 재기지원 사업에서 간병비를 지원한다는 정보를 발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신청을 하였고, 다행히도 선정이 되어 긴급한 위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의지를 보이며 저와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입원 기간 동안 어린 자녀의 일상생활을 위한 가사, 밑반찬 서비스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노원구청 신규 근로자를 요청하였고, 지체 없이 자녀와 연결해주어 어머님의 공백을 메우고자 노력했습니다.
걱정을 한시름 내려놓은 어머니는 무사히 간병과 치료를 잘 받으셨고, 퇴원 후에는 사전에 의뢰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와 함께 총 20회기의 전문상담을 진행하였습니다.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 또 한 부모 가장으로 늘 좌절감에 시달리던 어머니였지만, 여러 차례 상담과 사례관리를 진행하며 만난 어머니의 마음 깊은 곳에는 누구보다도 강인한 힘이 있었습니다. 다음 달에는 2차 무릎 수술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작년과 같은 상황이 주어졌지만, 사례관리를 통해 긍정적으로 변화된 어머니는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또 자녀와 함께 인근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진행하는 도시락 배달 봉사도 시작했습니다. 거저 받은 도움과 사랑이 크기에 베풀지 않고서는 안 되겠다며 쑥스러운 웃음도 보였습니다.
여전히 어머니는 저를 만날 때마다 손수 만든 식혜를 건네십니다. 그 식혜는 아마도 엿기름을 정성껏 달이고, 밥알이 삭을 때 까지 하루를 꼬박 기다리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녹록치 않은 생활 속에서도 식혜를 만드시는 이유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결국엔 달달하고 시원한 맛을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제게 늘 달달한 식혜를 주시듯, 저도 어머니와 ‘함께’ 하므로 식혜처럼 달달한 나날들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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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손편지 |
어머님이 건네주신 ‘달달한’ 식혜 |
* 서울시립북부장애인종합복지관 소식지 2020년 통권 65호 '세상을 만나는 또 하나의 길'의 내용을 박수미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게재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