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복지사로 걸어온 발자취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어느 현장으로 갈 것인지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어요. 가장 힘들고 낮은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사회복지사의 마땅한 길이라는 생각에 거주시설을 찾아 다녔고, 인연이 되어 아동양육시설(당시 ‘고아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4년 반을 일하는 동안 아이들에게는 ‘공부’보다는 ‘꿈’과 ‘경험’이 중요하다는 신념으로 임했고, 시설 아동의 성장 지원 정책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고 여겨 시범사업과 정책 제안 활동에 주력했어요. 또 당시엔 시설 아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지 않아 아동복지 저널을 창간했지요.
그 뒤 지방 사회복지협의회에서 잠시 일을 한 뒤에 1993년에 사회복지 출판사를 설립하게 되었어요. 현장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많은 업무와 열악한 근무 조건과 반복지적 복지정책”이 아니라 “사회복지사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하는가?”였어요. 사회복지사들이 접했던 책들 대부분은 대학에서의 교과서였습니다. 사회복지사들 스스로 깨어날 수 있도록 하는 책을 만들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250여 권을 출판했어요.
문제는 많은 사회복지사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겁니다. 깨달음을 얻기에는 책과 토론이 가장 좋은 길이라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책보다는 좀 더 수월한 강연회는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사회복지책마을 강연회를 2011년에 시작했어요. 당초에는 사회복지 주제보다는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과 건축, 농업, 예술 등을 다루려 했어요. 사회복지를 해 보니 사회복지를 흥미롭게 잘 하려면 인간 본연과 인간을 둘러싼 다양한 학문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당초의 계획과 달리 복지국가 주제 정책 강연을 많이 열었던 것은 당시 복지국가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사회복지계는 불구경만 하는 거예요. 그래 책마을에서라도 자리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에 복지국가 주제 강연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사회복지책마을의 복지국가 강연에는 70~100명의 사회복지사들이 참석을 했어요. 멀리 지방에서도 올라오곤 했지요. 하하.. 그런데 강연에는 오면서 행동은 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만든 것이 세밧사(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입니다.
◈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대표로서 역할에 대한 생각을 알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세밧사 대표라고 하지만 실제는 ‘무급 대표 간사’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겁니다. 상근 간사가 없는 시민단체가 그렇듯이 오만가지 일을 다 해요. 정당 대표를 만나 정책협약에 사인하는 그림 좋은 일에서부터 거리에서 전단지 돌리고, 현수막집에서 현수막 찾으러 가고, 그걸 또 가로수에 매달고 행사 끝나면 풀고 하는 것까지.
이런 일상의 업무와 다른 차원에서의 구실이라면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하나는 우리 사회의 반복지적 사회구조를 바꿔 우리나라 사람들이 실질적인 자유와 인간다운 삶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겁니다. 또 하나는 더 많은 사회복지사들이 함께 하는 세밧사로 키워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발전하는 데에 사회복지사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닦는 것이라 생각해요.
◈ 복지국가촛불은 어떤 활동인가요?
4월 촛불이 58차 복지국가촛불입니다. 2012년 7월에 시작하여 7년째 하는 소소한 복지운동 집회이지요. 세밧사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7개 단체가 ‘복지국가촛불연대’ 이름 아래 함께 해오고 있어요. 우리 사회에서 ‘복지국가’란 단어는 시류에 따라 간헐적으로 인용되고 있어요.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선 그러면 안 된다고 봐요. 사회복지계만이라도 늘 복지국가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거지요. 복지국가촛불은 바로 그런 책임을 지고 간다고 보지요. 세상 사람들은 생각날 때 복지국가를 언급하더라도 우리는 우리나라가 복지국가가 될 때까지 촛불을 들고 늘 복지국가를 노래하지요. 어떤 세밧사 회원이 그래요. 복지국가촛불은 복지국가로 가는 사회복지계의 플랫폼이라고.
◈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대표로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너무 많지요. 사교육 없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면 좋겠어요. 대학생들이 공무원 시험에 목숨 걸지 않고 사회와 인류를 위해 큰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어요. 모든 국민들이 집 걱정 없는 세상에서 살기를 바래요. 실손보험 필요 없이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병원비 걱정 없이 살아가길 바래요. 노인들이 자살하고 폐지 줍고 하는 이야기가 더 이상 없기를 바래요. 지금 우리 사회의 자화상은 너무 슬퍼요. 너무 가슴 아파요. 세계 최고의 빈부격차와 불평등, 물질 만능, 극열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전도 불투명한 각자도생의 인생살이.
이런 일들은 우리 사회에서 “정의, 인권, 평등, 연대, 민주주의” 이런 규범이 제대로 서질 않아서 그렇다고 봅니다. 다섯 가지 규범에 대한 토론이 초등학교 교실에서부터 대학 강의실에서 그리고 TV에서 일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사회적 규범은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세워지질 않아요. 복지국가 비전의 국민적 합의는 그런 규범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결과이지요. 그런 논의의 장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한데 복지국가촛불보다 더 힘드네요. 왜 힘드냐고요?
◈ 사회복지사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정체성에 대한 자기 질문입니다. 사회복지사는 뭐하는 사람인가? 그런데 이 질문과 대답은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복지사 선서문. 나는 언제나 소외되고 고통 받는 사람들 편에 서서 저들의 인권과 권익을 지키며, 사회 불의와 부정을 거부하고 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앞세운다. 선서문은 사회복지사를 “인권 옹호자, 사회정의 실현자, 공익 수호자”라 정의하고 있어요. 본질의 정체성을 기억하고 가까이 하려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 현장의 프로그램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지는 않은지? 그것이 이상이고 현실이라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기에 어떻게 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
‘가장’이라고 물으니 어려운 질문이네요. 2013년 초부터 사회복지공무원 연쇄 자살이 터졌을 때 광화문 청와대 국회 복지부 앞에서 100일 간 일인시위와 촛불집회를 하며, 사회복지공무원의 근무환경 개선에 관해 모든 중앙 매스컴이 특집 보도하도록 기획했던 일.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가 사회문제가 되고 국회에서 법률개정안이 발의되고 지난 총선에서 야 3당의 공약이 되도록 하였으나 대선에서 배신당한 일. 그 뒤를 이어 헌법재판소 헌법소원까지 청구한 일. 그 과정에서 전국 사회복지사와 12차례 신문광고 모금을 했던 일. 희귀난치성 질환 어린이의 병원비를 모금하는 관행을 중단하라며 시작한 “어린이병원비 국가보장운동”이 2017년 대선에서 후보들이 공약으로 받고 당선자가 50%를 이행한 성과. 사회복지사의 사회행동을 재인식하도록 ‘세밧사상’을 제정한 일.
이런 일들을 세밧사 혼자 하지 않고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복지시민단체들과 끈끈히 연대해 왔다는 점이 고맙고 진한 기억이 될 것입니다.
◈ 향후 목표나 계획이 있으시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린이병원비 국가보장운동”을 현 정부가 절반을 받은 상태이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시즌2 운동으로 <100만원 상한제 도입으로 18세 미만 850만 아동 병원비 완전 해결>을 3년 안에 완성하여 ‘병원비 걱정 없는 세상’을 1차 달성하는 것이고요, 또 하나는 줬다뺏는 기초연금 헌법소원을 꾸준히 추진하여 기초연금의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복지국가 재원 확보를 위한 증세운동을 시작하는 겁니다. 국민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더 내겠으니 정부는 복지국가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라고 명령하는 그림이지요.
이러한 일련의 복지운동을 지속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사회복지사들의 참여가 절실합니다. 사회복지사들이 복지현장과 복지운동의 연계성을 인식하고 함께 하자고 전국을 다니면서 복지국가운동을 호소할 생각입니다.
◈ 후배 사회복지사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사회복지를 왜 하는지? 나는 어떤 사회복지사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바랍니다. 사회복지를 10년 하면 자동차도 살 것입니다. 20년 하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집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복지를 하면서 내 삶은 바뀌었는데 나를 스쳐지나간 주민이나 이용자 중 나와 우리 시설로 인해 삶이 바뀐 사람은 몇 명인가요? 우리나라 사회복지를 어떻게 바꾸었나요? 수시로 성찰하기 바랍니다. 4년 공부한 거로 평생 버티지 말고 평생을 공부하면서 사회복지사의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기 바랍니다. 사회복지사라고 사회복지만 공부하기보다 사회복지의 근본과 환경이 되는 기초 학문과 연계 학문도 공부하길 바랍니다. 생각의 범위를 넓혀 interdisciplinary 개념뿐만 아니라 transdisciplinary 개념도 공유하면 어떨까요? 사회복지사를 영어로 social worker라 하지만 현실속의 사회복지사는 “social labourer, social worker, social designer, social artist” 중 하나일 것이고 그것은 자신의 선택입니다. 자신의 묘비에 새겨지는 이름으로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선택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