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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서울사회복지사 서비스감동실천사례공모대회 우수작


흔들리며 피어나는 꽃, 가족


신보경 사회복지사

(면목종합사회복지관)

 

 

이름, 서로를 알아가는 시작

하세? 심보겅 선생~!”

매일 아침 830분에서 930분 사이. 잔뜩 애교가 섞인 목소리의 그녀가 내게 전화를 건다. 솔직히 얼마 전부터는 거르는 날이 생겼지만 지난 몇 개월간은 출근 시간 전부터 퇴근 시간 후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찾는 그녀의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까지만 들어도 24명 직원 모두가 나에게 걸려온 전화인 줄 알아 챌 정도다. 이렇게 애인보다? 깊은 애정을 듬뿍 표현하는 그녀는 지적장애 3급의 미소가 어여쁜 박미소(가명/43) 어머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1월에는 다짜고짜 여보세요? 저랑 상담하는 성샌님 바꿔주세요.”라는 바람에 직원들이 당황하기 일쑤였다. 안되겠다 싶어 재차 내 이름 알려 드렸지만 어려워하셨다. 좀 더 쉬울까 싶어 외모의 특징으로 눈 큰 선생님이라고 불러달라고 부탁해보기도 했지만 이내 상담 선생님으로 되돌아 왔다. 이유가 뭘까?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쑥스럽다고 했다. …… 처음부터 어떻게 부르는 게 편하실지 물어볼 걸 잘못했다 싶기도 하고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마침 같은 시점에 동료 선생님이 조심스레 아주 중요한 조언을 해주었다.

눈 큰 선생님도 좋지만, 혹시 어머님이 사고가 나거나 외부인 도움이 필요할 때 선생님 이름을 알리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름을 모르면 곤란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차! 싶었다. 나는 나름대로 어머니가 할 수 있는 만큼을 존중하고 배려하려 자는 마음이었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명확하게 알도록 돕는 것이 더 큰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머니를 과소평가한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어머니와 호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또 직원들이 전화응대 하는 것을 관찰했다. 그리고서 내린 결론! 직원들과 공유하고 도움을 요청하였다.

<< 전화 응대 시 부탁드립니다. >>

박미소 어머니가 "오전에 상담한 선생님이요~, 어제 만난 선생님이요~" 와 같은 방식으로 저를 찾으면 "신보경 선생님이요?"라고 또박또박물어주세요!^^ 누군가 제 이름을 말해주면 어머님은 잘 기억하시고 "~ 신보경 선생님이요"라고 대답한답니다. 정확한 발음을 자꾸 들으셔야 제 이름을 외우는데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여러 선생님의 도움으로 나는 상담 선생님에서 싱모영 성샌님, 그리고 심보겅 성샌님까지 되었다. 역시 박미소 어머니. 해낼 수 있었다. 적절한 도움이 있으면 어머니의 능력이 충분히 향상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만나는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박미소 어머니는 어디까지 변화될 수 있을까? 또 무엇을 배워야 할까? 기대도 되고, 고민도 되었다.

 

새로운 기회를 여는 힘, “용기

아침마다 전화한 박미소 어머니가 하는 이야기의 내용은 상당히 일관성 있었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나를 무시한다, 나는 억울하다,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는 내용이었다. 하루, 이틀.... 반복적으로 이야기를 듣다보니 언제 그런 이야기를 들으셨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되었다. 어머니가 일 년 전에 들은 이야기도, 삼년 전에 들은 이야기도 방금 들은 이야기처럼 전해주신다는 걸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어머니에게는 그 모든 힘든 감정이 켜켜이 쌓여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하게 견뎌야 하는, 한꺼번에 쏟아지는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고 있는 듯 보였다. 어떻게 하면 어머니가 이 모든 과거와 힘든 시간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참으로 어려운 고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알코올중독자인 남편이 췌장문제로 입원을 했다. 입원비를 중간 정산하는 날. 남편을 못 믿겠어서 정산을 맡길 수 없으니 함께 병원에 가달라고 어머니가 요청했다.


병원은 지하철로 4정거장을 가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어머니가 일상생활을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지하철을 타고 가보자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힘으로 아버님의 병원까지 가보자고 했다. 내가 같이 가고는 있지만 어머니 혼자 가는 것처럼, 나는 따라가는 입장에 있을 테니 한 번 스스로 가보기에 도전하자고 했다. 어머니는 싫다고 하지 않았다. “저 혼자요?”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던 어머니는 곧 알았어요.”라고 했다. 문맹인 어머니는 지하철 표를 끊는 것부터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나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만약에 제가 없었다면 어떻게 해결하셨을 까요?”라고 물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로 다가가는 어머니. 물어보러 갈 때도 계속 나를 쳐다보더니 물어보고 나서도 나만 계속 돌아본다. 바로 알려주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어머니 스스로 해결해보시도록 기다리고 눈 맞춤으로 힘을 드렸다. 그래도 정 안되겠다 싶을 때만 귀띔을 좀 해드렸다. 어머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머니의 태도에 당황해하고, 이상하게 쳐다보고, “저기 팻말 보고 가시면 되어요.”라며 알아듣지 못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그걸 읽을 줄 알면 누가 물어보나? 살짝 화가 나기도 했다. 병원 내에서 만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사회가 많이 통합적인 분위기가 되었다지만 여전히 지적장애인에게는 너무나 살기 어려운 세상임을 깊이 체험하는 날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수납원을 만났다. 정산하러 왔다는 것도 가까스로 설명해낸 어머니는 가방에서 주민등록등본을 수납원에게 전달하고 나서야 남편의 정산비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혹시 몰라 항상 중요한 서류를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시나 보다 싶으니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내 마음과 달랐는지, 옆에 있는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냐는 듯이 수납원이 나를 쳐다보기에 살짝 눈을 피하고 계속 어머니를 기다려드렸다. 이번에는 어머니의 가방 속에서 현금 봉투 여러 개가 나왔다. 필요한 것들을 잘 담아가지고 다니는 어머니를 보니 삶에 노하우가 생겼나 보다 싶었다. 어머니가 병원비를 계산해서 봉투에 담아달라고 나에게 부탁하기에 돈을 한데 꺼내어 병원비와 생활비 둘로 구분했다. 그리고서 무슨 봉투인가 자세히 보니 저축, 식비, 도시가스비, 휴대폰비, 남는 예산이라고 쓰여 있었다. 중학교 3학년인 큰아들이 도와준 것이라며 어머니가 미소 지어 보였다. 은행에 갈 때 아들과 딸이 많이 도와준다고 했다. 똑똑하게 일처리 해준 아이가 대견스러웠다. 하지만 또래들은 신경 쓰지 않을 삶의 무게를 지고 있다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어머니와 돌아오는 길에 혹시 한글을 배워보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전에도 제안 받은 적이 있는데 하지 않았다며 생각을 좀 해보겠다고 했다. 어머니와 다녀보니 살아온 연륜이 있어 눈치가 빠르고, 그 눈치로 일상생활을 수행해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강점에 문자를 읽을 수 있는 능력까지 더해진다면 어머니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것이 훨씬 많아질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편안해지고, 남편과 시어머니의 무시도 덜어질 테고, 가족들과의 관계도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나 설렜다. 나의 급한 마음을 억누르고 생각해보겠다는 어머니의 의견을 존중해 며칠을 기다렸다. 하지만 계속 결정 하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문자를 읽으면 일상생활에서 달라질 수 있는 점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꾸준히 설득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문자공부를 시작해보겠다고 용기를 내주었다. 너무나 기쁘고 감사했다.


어렵게 결심한 만큼 잘 가르쳐줄 수 있는 분을 소개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무래도 연배가 있는 사람이 좋지 않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동료 선생님에게 좋은 노인일자리 선생님을 소개받았다. 손자손녀들의 한글을 깨우쳐주었을 뿐 아니라 활동도 성실하게 하는 훌륭한 분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은 박미소 어머니와의 만남을 시작하자 문자 공부도 확실히 시켜줄 뿐만 아니라, 고민 상담에, 기분전환하자며 맛있는 것까지 사주는 등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써주었다. 박미소 어머니는 한글 선생님이 엄마 같아요.”라고 했다. 2년 전에 돌아가신 친정엄마 같기도 하단다. 공부를 시작한 지 8개월이 지난 지금, 박미소 어머니가 읽을 줄 아는 글씨는 아직 없다. 하지만 네 식구 이름과 나의 이름을 쓸 줄 알게 되었다. 또 엘리베이터 버튼도 가끔은 제대로 누를 수 있다. 학습하는 데 오래 걸리는 지적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빠른 성과였다. 어머니가 용기 내어 시작했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들이다. 역시 시도할 때에만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가 문자공부를 시작하시던 그 때 나는 또 한 번 생각에 잠겼다. 날마다 호소하는 가족관계의 실타래를 풀기 위한 핵심 열쇠는 무엇일까?

 

비밀의 열쇠, “소통

선생님! 내가 어~~뜨케 하면 좋을까요? 남편은 내 맘 몰라요!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내 말이 맞지 않아요, 선생님?”

돈 때문에, 술 때문에, 서로가 답답해서 자꾸 다툼이 났다. 지난 3년 동안 남편은 알코올중독과 자살시도로 인해 4차례 정신과병원에 입원했고, 3차례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그 사이 어머니 홀로 살림살이와 자녀양육을 감당하는 것이 버거웠고, 남편이 그렇게 된 게 스트레스를 주는 어머니 탓이라고 하는 시댁의 비난은 더욱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어머니 곁을 지켜온 큰 아들은 아빠가 일어서 줄 거라는 기대와 좌절을 반복하다 결국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박미소님의 남편은 부인과 자녀들이 자신을 배제한 채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며 집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찾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모두가 마음에 상당한 화를 품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나 또한 이런 가족들을 생각할 때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가족이지 않은가? 평행선 같아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선으로 묶여있는 가족! 쉽게 끊어지지 않는 연결고리 가족!


여러 날 고민한 끝에 멀찌감치 떨어진 가족들의 마음을 가까이 끌어당기기 위해 시도한 것은 돈에 대한 정리였다. 박미소 어머니는 남편에게 돈을 주면 술값으로 써버릴 것과 술김에 죽겠다고 할 것을 늘 염려했다. 그러다보니 남편은 부인이 돈을 주지 않는 것과 자신을 가둬둔다며 화를 냈다. 또 금전처리를 아이들과 하고 있는 어머니를 보며 특히 큰 아들이 거짓으로 엄마를 구슬려 제 필요한 곳에 물 쓰듯 돈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공과금이 몇 개월씩 미납되었고, 그 외에도 지출할 것이 많다는 걸 남편이 알게 되어도 계속 술 값, 담뱃값만 요구할까? 혹시 몰라서 더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어머니와 남편의 생각을 따라 가다보니 투명하게 소통하지 않아서 생긴 불신의 빈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여기서부터 시작해봐야겠다 싶었다. 돈이라는 단편적인 것 뒤에 많은 서로에 대한 감정, 가족원의 위치와 역할이 모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가족들에게 조심스레 나의 뜻을 설명하고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가족회의를 했으면 좋겠어요.”

박미소님의 남편과 자녀들은 무관심해 보일 정도로 시큰둥한 반응이었고, 어머니는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것 왜 하느냐며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 나보다도 먼저, 진작부터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인 걸까?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그렇게 미지근~한 분위기 속에서 가족회의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첫 번째 가족회의. 작은 방에 있던 큰 아들은 결국 나오지 않겠다고 했다. 혹시 오늘 정해지는 사안이 있으면 불참자로서 권리를 포기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는데 귀찮다는 듯이 알아서 하라고 했다. 다른 가족들도 한 방에 앉는 것조차 어색했다. 어색한 기류도 깰 겸, 앞으로 아름다운 가족회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인터넷에서 출력해온 가족회의에 관한 글들을 함께 읽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회의에서 지켜졌으면 하는 규칙들을 이야기 나누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터라 발언은 많지 않았다. 약식의 선서식까지 마친 후 공식적인 가족모임을 시작했다. 첫 진행자는 내가 맡았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아무래도 오랜만에 만난 탓인지 각 안건마다 다들 할 말이 많았다. 서로 말을 자르고 중간에 의견을 내거나 믿지 못하겠다고 언성을 높이는 통에 나는 말리고, 상한 감정을 도닥이고, 다시 규칙을 설명하느라 어느새 목이 쉬어있었다. 어쨌든 회의에서 논의된 생활비 지출에 대한 규정(가족별 용돈, 공과금 납부일 엄수, 자녀들의 후원금은 학비의 용도만으로 사용할 것, 부모는 자녀의 돈을 줬다 뺐지 않기 등), 문화카드 사용에 대한 규정, 가족회의 방식에 대한 규정이 합의되었다. 끝이 날 수 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마지막으로는 나의 억지 요청으로 인해 오늘 모임에서 유익했던 것까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 어머니: 난 안 해요.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했어요. 내일 내가 선생님한테 따로 이야기 할게요.

남편: 현재 결과는 없지만 앞으로 더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딸이 아빠랑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어요.

: 오늘 결정된 대로 잘 되면 집에서 돈 쓰는 게 많이 나아질 것 같아요. 회의가 진행되면서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비록 어머니가 불편한 마음을 가진 채 모임이 끝났지만 남편과 딸이 희망을 품었다는 면에서 커다란 성과였다. 목이 쉴 만큼 우리 모두 이 순간 열정적이었고, 마음의 빗장을 여느라 삐거덕거리기도 했지만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두 번째 가족회의에 아들이 참가했다. 지난 모임에서 정해진 자신의 용돈 2만원이 너무 적어서였다. 스스로 의견을 내지 않으면 가족들이 의견을 수용해 줄 수 없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발언하기 위해 참가했단다. 신기하고, 반갑고, 기뻤다. 네 식구가 모두 한 자리에 모이다니! 하지만 두, 세 번째 가족모임은 모두 남편과 아들의 다툼으로 끝났다. 엄청 속상했다. 하지만 오랜 상처들이 단번에 회복될 수는 없는 법. 첫 술에 배부르랴!!


네 번째 모임부터 아들은 함께 참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방에서 우리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음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거듭할수록 가족회의는 많은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지난 20142월부터 시작된 가족회의는 9월까지 총 7번 진행되었다. 첫모임에서 결정된 대로 매월 20, 수급비 받는 날 저녁은 박미소 어머니의 안 방 불이 환히 켜지는 날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목이 쉬지 않는다. 가족들이 서로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주기 때문이다. 모임 시간이 짧게는 1시간까지 줄어든 날도 있었다. 네 번째 모임부터는 남편이 진행자를 담당하여 모임의 시작과 생활비 배분 역할을 담당한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돈의 활용에 관한 이야기를 위주로 하던 분위기에서 일상생활에 관한 공유나 결정을 이야기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이들은 돈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 좋아졌다고 했다. 요즘은 어머니가 은행 일도 거의 혼자서 본다. 문자 공부를 시작한 것과 낯선 사람에게 도움 요청하기를 경험한 것, 스스로 해보기의 기쁨을 느꼈던 것이 큰 힘이 되었고 이것이 가족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가족회의 이후 한 번도 공과금이 미납되지 않았다. 오히려 아끼고 절약해서 고액으로 연체되었던 비용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담당하기로 한 공과금 납부가 여전히 제 때 잘되지 않는 경우들이 생겼는데, 계속 마찰이 생기자 늘 어머니에게 책임을 묻기만 하던 남편이 일부 담당하겠다고 자청하는 변화도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재미있게 생각하는 변화는 가족들이 화가 났을 때, 혹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선생님, 가족회의 때 이야기 해볼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모두 이날을 가족들과 소통하는 중요한 날이라고 생각하나보다.

 

흔들리며 피어나는 꽃, “가족

여름 즈음, 남편은 고향으로 내려가 다시 자살시도를 했다. 부부의 격심한 마찰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았다. 어머니를 비롯해 가족들을 만나며 합의했던 것들이 모두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10월을 맞이한 지금은 분명 많은 게 달라져 있다. 부부의 다툼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남편의 음주량도 상당히 줄었다. 몇 달간 어머니와 남편에게 죽겠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고, 자연히 어머니의 정서도 많이 안정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걸려오던 전화를 거르는 날도 있고, 목소리도 많이 밝아졌다. 신기한 일이다.

고마워요 선생님, 선생님이 우리 가족 많이 신경 써 주시니까~”

박미소 어머니는 한껏 밝은 목소리로 자주 격려해준다. 얼마나 고마운지, 또 힘이 나는지 모른다. 나까지 생각해주는 따뜻한 마음과 어머니의 배려심에 자주 감동받는다. 이게 사례관리의 기쁨이 아닐까?


사실 지적장애인인 어머니와 소통하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는 않았다. 알코올에 중독된 아버님을 만나는 것도, 마음이 뿔뿔이 흩어져버린 가족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어려웠다. 하도 고민하는 통에 흰머리가 몇 개씩이나 늘어난 것도 같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사회복지사인 나에게 큰 배움이었고 기쁨이었다. 인내하고, 관찰하고, 포기하지 않고 합의하며 함께 해나가니 변화하는 걸 볼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행복하다. 이런 마음을 가지니 다른 이용자분들의 변화 가능성까지 깊은 확신으로 다가왔다. 모든 것 하나하나가 감사하다.


이 벅찬 마음을 안고 요즘은 큰아들과 친해져보려고 노력 중이다. 언젠가 마음에 쌓인 응어리를 풀고 가족 안으로 들어올 수 있기를 기대하며 말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연약한 꽃처럼 위태로워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쉽사리 꺾기지 않고 결국 예쁜 꽃이 피어나듯 박미소 어머니 가족도 오늘보다 내일 더 아름답게 피어나지 않을까?

 

  

그리고 지면을 빌어 가족들의 변화를 위해 함께 고민하고 애써 준 관장님 이하 동료들, 지역기관들(정신건강증진센터, 학교, 병원), 노인일자리 선생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신보경-별첨 (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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