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의 차이
「헬렌 켈러-A life를 읽고」
유락종합사회복지관
이가영 사회복지사
헬렌 켈러의 이야기는 어렸을 때부터 동화나 위인전을 통해 익숙하게 알고 있었다. 책장을 넘기기 전에 내가 알고 있는 헬렌에 대해 생각해보니, 시청각장애를 극복한 장애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헬렌켈러를 이렇게 단순하고 단편적으로 기억하는 데는 인물의 업적에 초점을 맞춰 드라마틱한 부분을 강조하는 위인전이 한 몫을 한 것 같다.
이러한 인식의 틀에 갇혀 있던 나에게 제목으로 다가 온「헬렌 켈러-A life」는 읽으나 마나할 것 같은 책이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인식의 틀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헬렌 켈러와 앤 설리반의 업적이 아니라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이들의 일상, 정말 사람다운 모습들이 담겨 있어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위대한 인물이 아닌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물로 헬렌켈러를 만나게 된 것이다.
한 개인으로써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은,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일 것 같은 헬렌 켈러와 그녀의 동반자 앤 설리반. 이들의 내면에 찾아온 갈등과 생각들, 또 겉으로 드러나는 관계의 어긋남들과 인간적인 욕심들까지 특별할 것이 없는 내 모습과 비슷한 것 같은데 너무나 다른 삶인 것 같다. 나와 헬렌에게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 빛이 없는 어둠이 있다면 그것은 무지와 외면의 어둠일 뿐이다.
우리는 다르다. 볼 수 없는 사람들과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서로 다르다.
감각이 다른 것이 아니라 감각을 사용하는 방법이 다르다.
감각을 뛰어넘는 지혜를 찾기 위해 펼치는 상상력과 용기가 다를 뿐이다. ”p.546
책 맨 마지막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고, 그것은 바로 용기였다. 무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지고, 설령 나의 무지에 대해 알더라도 외부로 노출되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당연히 해야 할 공부를 게을리 했던 나의 모습. 주어진 상황에 쉽게 적응하고, 최대한 힘들이지 않으려는 나의 모습이 한 없이 부끄러워졌다. 장애가 있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 애를 쓴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았던 헬렌 켈러의 모습이 귀감이 된다.
나의 무지함을 삶에 대한 불만과 세상에 대한 분노로 덮으려 하지 말고, 세상이 복잡해졌고, 한 개인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고 핑계대지 말아야겠다. 목적과 방향 없이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내가 느끼는 장애임을 기억해야겠다.
또한 이 책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헬렌 켈러의 모습. 그 모습은 어떤 이해관계로 만들어 진 것이며 누구를 위한 것이냐 하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헬렌켈러를 관리한 협회에서는 헬렌켈러가 단장을 하지 않고는 인터뷰나 사진촬영을 허락하지 않았고, 사진조차도 꾸미지 않은 모습은 흉하다며 삭제토록 강요했다는 내용이 있다. 헬렌켈러는 철저하게 이미지를 포장 당하였고, 사람들이 원하는 거룩한 성인의 이미지로 관리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무언가에 의해 생각을 당하고 있다. 이제는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하는 생각들에 물음을 던져야 할 때가 아닌가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