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의 쟁점과 진실
기초보장 연석회의 김잔디 간사(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보장법)이 제정된 것은 IMF외환위기에 따른 대량실업 발생, 정부 대책의 부재의 영향을 받았다. 경제위기는 누구나 실업자와 빈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고, 결과적으로 기초생활보장의 책임은 개인이 아닌 ‘국가’에게 있다는 개념이 확산되었다. 더욱이 근로능력의 유무에 따라 보호여부를 결정하는 미온적 정부정책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무용지물이라는 것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에 1999년 제정된 기초보장법은 헌법에서 규정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현실 세계에서 구현한 최초의 법률로서, 이 법을 통하여 국민은 정부로부터 기초적인 생활에 대한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게 되었다.
다만, 엄격한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한 대규모의 사각지대 존재, 비현실적인 최저생계비, 비합리적인 소득인정액제도, 차상위 계층에 대한 법적 지원 미비, 수급자가 되지 못하면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는 급여체계 등의 문제를 안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 이 중, ‘부양의무자 기준’은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임에도 불구하고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기초생활 보장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빈곤층이 약 117만 명에 달하는 등 빈곤층의 사각지대를 양산하는 독소조항으로 꼽히고 있다.
[그림 1. 현행 기초보장법 사각지대]
- 기초생활보장제도 신청 탈락 이유 중 74.2%가 부양의무자 기준 초과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공약을 통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급여체계 개편’을 내세워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개별급여’를 도입을 추진 중이다. 개별급여를 도입하여 기존 수급자에게 집중된 복지혜택을 차상위계층까지 포괄하고, 탈수급시 서비스 급여 및 서비스 중단 등의 탈수급 기피현상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6월 새누리당 유재중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한 기초보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해 정부의 개별급여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개선방향이 드러났다. 이어서 2013년 9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맞춤형 급여체계 개편방안”을 사회보장위원회에 다시 제출한 보고서에서 현 정부는 (1) All or Nothing의 선정기준을 다충화하여 탈수급의 유인을 제고하며, (2) 급여별 특성 및 상대적 빈곤 관점(중위소득)을 반영하여 보장수준을 현실화하며, (3)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여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림 2. 보건복지부 기초보장법 개편방향]
구체적으로 정부가 추진하려는 기초보장법 개편방향에 어떤 쟁점과 진실이 있는지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번 정부 개편방향에서 시민사회계의 가장 큰 문제제기를 받고 있는 부분이 사실상 '최저생계비 폐지‘이다. 현재 최저생계비는 수급자 선정기준(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이면서 급여의 수준(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생활 유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예산은 경성예산으로 최우선으로 확보하고 있지만, 최저생계비가 폐지되면 연성예산으로 변경되어 국가의 경제상황, 행정부처의 재정역량에 따라 예산책정의 우선순위에서 다른 복지정책에 밀려나거나, 축소가 용이해질 수 있다. 또한 그동안 국민들은 국가로부터 보장받아야할 기초생활보장 수준을 최저생계비를 통해 명확히 알 수 있었지만, 이 제도가 폐지됨으로써 국민의 권리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없게 된다.
둘째, 개별급여 도입으로 인한 전달체계의 혼란이 예상된다. 개별급여가 도입이 되면 주거급여는 국토교통부, 교육급여는 교육부, 생계 및 의료급여는 보건복지부가 관장하게 된다. 또한 각 급여별 대상자와 급여수준 선정기준, 부양의무자 기준 등을 각 부처별로 정하도록 되어 있다. 이미 사회복지전달체계는 사회복지전담공무원 뿐 아니라 일선 사회복지사들에게 많은 업무과중을 발생시켜 전달체계의 개편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통합적으로 관리·운영되던 급여들이 각 부처별로 다른 선정기준에 의해 조사·평가·선정되는 것은 지금보다 더 많은 업무와 행정절차를 발생시키게 될 것이다.
셋째, 현행 통합급여는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각 급여의 수급자 선정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것이지, 수급자로 선정이 되면 모든 급여를 다 받고, 비수급계층은 어떤 급여나 서비스를 받지 못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All or Nothing”라는 표현으로 현행 통합급여의 문제점을 왜곡하고 있다. 차상위계층을 포함한 비수급빈곤층의 문제는 최저생계비 현실화와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는 방식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정부여당이 추진하려는 개선안은 위에서 제시된 어떤 문제점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제도의 권리성을 훼손하여 장기적으로 국민의 생존권과 관계없이 행정부처의 재량에 따라 급여수준을 쉽게 조정할 수 있는 절차적 편리성을 추구할 뿐이다.
넷째, 더 많은 국민에게 더 많은 급여를 지급한다면서 기존의 수급자 중에 탈락자가 발생하게 되며, 기초보장에 필요한 예산은 축소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개별급여 도입으로 수급권자가 83만가구에서 110만 가구로 늘어나 사각지대를 축소하는 좋은 개편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기준의 수급자들이 탈락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은 현 수급자의 보장된 권리를 빼앗아 수급자 수를 늘리는 꼴이 된다.
2014년 기초보장제도 예산편성을 살펴보면 가장 인상률이 높은 예산은 주거급여(28.0%), 취약계층 의료비 지원(17.3%)이다. 반면에 삭감률이 높은 예산은 긴급복지(△20.0%), 교육급여(△14.2%), 자활지원(△7.7%), 생계급여(△2.6%)순으로 2013년 최저생계비가 5.5%인상된 것에 반해 기초보장제도 예산은 3.4% 인상에 그쳐 오히려 예산이 축소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게다가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기초생활보장사업 평가보고서에서는 “2012년 결산기준으로 현 정부의 개별급여안을 도입할 경우 약 6.5조의 예산을 절약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밖에도 수급신청 결정통보기간이 30일에서 60일로 증가시켜 생존의 위협을 받는 주민들의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등 수급자의 권리성을 축소하거나 박탈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정부의 기초보장제도 개편방향이 매우 우려된다.
이러한 쟁점을 중심으로 기초보장법의 권리를 확보하고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 종교·여성·빈민·장애·자활·사회복지·인권·노동·시민사회계 등 각계가 함께 2월 10일 ‘국민기초생활보장 지키기 연석회의(이하, 기초보장연석회의)’가 발족했다. 기초보장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를 일반 국민들도 이해하기 쉽게 알려나가고,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대안을 마련하여 개선되도록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이번 활동에 있어 복지현장에서 기초보장제도를 직접 실천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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